日 '강제동원 조선인 추도비' 철거…외교부는 원론적 입장만
외교부 "우호 관계 저해않는 방향 해결 기대" 입장 재확인
日 시민단체도 반발하는데…'역사 지우기' 확산 우려도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후대에 알리고 반성하기 위해 세워진 추도비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9일 철거 공사를 시작하는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그것이다.
외교부는 이날 "이 사안이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3일 추도비 철거 움직임 때 밝힌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일본 시민단체도 반발하는 '강제동원 역사 지우기' 시도에 우리 정부는 미온적 대응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시는 잘못 반복 않겠다" 군마현 추도비는 무엇?
추도비는 2004년 지역 시민단체 중심으로 '군마의 숲' 내에 세워졌다. 군마현은 과거 일본 육군 화약제조소 등 군수공업이 발달한 곳으로 추도비는 군마현 각지에서 희생된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들을 추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수는 최소 6000여명으로 알려졌다.
비문에는 '과거 일본이 조선인에 막대한 손실과 고통을 입힌 역사적 사실을 기억에 깊이 새기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비 건립에 대해서도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며, 새로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다져가고자 이곳에 노무동원으로 희생된 조선인을 진심으로 추도하기 위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매년 추도 행사도 있었던 추도비가 논란이 된 건 2014년이다. 일본 우익 세력이 2012년 이곳을 추도하는 집회에서 '강제 연행'과 같은 정치적 발언이 나왔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군마현은 추도비 설치 허가를 내주며 '정치적 행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는데, 시민단체가 조건을 위반했다며 2014년 연장 설치를 불허했다.
추도비를 관리하는 시민단체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은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2022년 6월 지자체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아사히 신문 등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군마현은 이 시민단체에 추도비 철거 '행정 대집행'를 실시해 내달 11일 마무리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군마현은 철거 비용 약 3000만 엔(약 2억7000만 원)도 시민단체에 청구하고 철거된 비석도 시민단체 측이 회수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시민단체도 반발하는데…우리 정부는 왜?
일본 내 시민단체들은 추도비 철거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일본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26일 홈페이지를 통해 "군마현 추모비 철거 행정 대집행은 역사부정론자의 헤이트스피치(혐오 발언), 헤이트 크라임(증오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라며 "역사적 사실에 등을 돌리는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추도비 관리 시민단체도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에게 성명문을 보내 "현내에 그치지 않고 일본 전체에 관한 중요한 문제"라며 "식민지 시대 가해 역사를 지우는 행위에 (군마) 현이 가담하는 것"이라며 철거 중단을 촉구했다.
문제는 군마현 추도비 철거를 계기로 일본에 있는 여러 관련 추도 시설에도 '역사 지우기'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이날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일본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우경화,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역사 부정론에 지배되고 있는지 극명하게 나타내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일본 내 시민단체의 수십년 성과를 부정하고,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면서 우호 관계 성립이 가능하겠느냐"며 "정부의 소극적 대처는 일본의 극우적 역사관에 부화뇌동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올바른 역사 의원모임)은 추도비 철거를 강하게 규탄했다. 야당 의원으로 구성된 올바른 역사 의원모임(유기홍 대표의원)은 "조선인 강제 동원 추도비 철거는 '통절한 반성과 사죄' 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김대중-오부치 정신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강제 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일본은 추도비 철거를 즉각 철회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를 겨냥해서는 "외교부는 조선인 강제 동원 추도비 철거에 대해 미온적 입장 표명에 그쳤다"며 "일본의 강제 동원 역사 지우기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면 피해국으로서 철거 반대 입장을 강력히 주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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