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관점따라 달라지는 ‘구조안전진단’
제대로 시공 땐 백 년도 버텨
경제적 이익 위한 재건축은
환경오염·자원 낭비하는 꼴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30년 이상 노후화된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주택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아파트’, 즉 공동주택을 일컫는 것이리라. 그동안 오래된 아파트를 철거하고 다시 지으려면 아파트가 낡아서 위험하다는 판정을 구조 안전 전문기관으로부터 받아야 했다. 이 과정을 ‘구조안전진단’이라 한다.
‘구조안전진단’이란 것이 현대의 과학기술을 이용한 기법이라 일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 사정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할 때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에 대한 구조안전진단이 있었다. 당시 구조안전진단을 맡았던 한국의 강구조학회와 미국 회사는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 회사는 위험하니 철거해야 한다고 했지만, 한국의 철골구조 전문가 집단인 강구조학회는 적절한 보강만 하면 앞으로 족히 30년은 더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 끝에 서울시는 ‘안전하게’ 철거하는 쪽의 결론에 따랐다. 이로 말미암아 서울시는 자칫 시민의 안전과 관련된 골치 아픈 문제를 ‘철거’라는 간명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구조안전진단을 수행했던 미국 업체도 홀가분하게 되었다. 안전하다고 했다가 무너지면 큰일이지만, 안전하지 않다고 하면 뒷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철교가 철거되고 새 철교가 건설되기까지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 더해 기존 다리의 철거와 새 다리 건설에 막대한 세금이 들어갔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양심 있는 전문가와 신(神)만이 알 것이다. 이렇게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구조안전진단이 구조체의 현상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구조계산을 하는 것인데 현상의 파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숭례문 화재 후 ‘구조안전진단’이 있었다. 숭례문은 다듬은 돌로 홍예를 틀어 출입문을 둔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올린 구조라 화재 시 목구조인 문루는 탔지만 아래 석축은 멀쩡했다. 문루에서 시작된 불길은 위쪽으로만 번졌지, 아래쪽에는 불길이 전혀 닿지 않았다. 그러나 화재 진압 시 엄청난 양의 소방수가 뿌려졌기 때문에 물이 석축 내부로 유입되어 석축이 약해졌을지 모른다는 의견이 있었다. 나름 그럴듯한 주장이었다. 숭례문 화재가 발생한 2008년 2월 10일 20시 48분부터 화재 진압이 완료된 다음 날 2시 5분까지 총 5시간 17분 동안 엄청난 양의 소방수가 숭례문에 뿌려졌으니 아래쪽 석축에 스며들어 석축을 이완시겼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화재 전인 2005년 숭례문 석축의 변형 상태를 측정한 자료가 있어 이와 비교해 보면 소방수의 유입으로 인해 추가 변형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구조안전진단 결과 석축은 변형이 없었다. 화재 당일 뿌려진 소방수는 석축 위에 설치된 배수 장치인 석누조(石漏槽)를 통해 외부로 배수된 것이 확인되었다. 옛사람들의 지혜가 힘을 발휘했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결과가 나왔으면 석축을 해체하고 다시 쌓아야 했다. 석축을 해체하고 다시 쌓게 되면 못 쓰는 돌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돌은 결이 있어 해체하고 다시 쌓는 과정에 갈라지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숭례문 석축은 옛 모습을 상당히 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일성으로 전국에 널린 30년 이상 된 아파트에 앞으로 재건축 바람이 불지 지켜볼 일이다. 그동안은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이 대세였다. 최근 건축 기술의 발전으로 리모델링을 통해 얼마든지 헌 아파트를 새 아파트로 둔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배관 및 전기설비의 교체, 구조보강, 증축, 평면의 변경 등 현재의 리모델링 기술은 못하는 것이 없다. 무엇보다 멀쩡한 건물을 철거하게 되면 막대한 양의 건설 폐기물이 발생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원을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다. 환경 오염과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치일까?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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