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된 축구 한일전[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한때 페널티킥 징크스가 있던 손흥민이었다. 페널티킥을 앞둔 선수들을 보면 그러하듯이 득점에 대한 기대, 실패에 대한 우려가 짧은 몇 초간 동시에 증폭됐다. 그러나 이번의 우려 속에 담긴 것은 단순히 득점 실패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상황은 2-2. 손흥민이 골을 넣으면 한국이 3-2로 앞서 나가며 E조 1위로 올라설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D조 2위가 확정된 일본과 16강 토너먼트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앞선 요르단 및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한국이 호화 멤버를 지닌 팀치고는 경기 내용이 너무 좋지 못했고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뮌헨) 등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는 스타들로 구성된 한국 대표팀이 부진하자 중국 등 해외 언론에서 먼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국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일었고 일부에서는 노골적으로 한국이 16강전에서 일본을 만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경기를 느슨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마주한 손흥민이었다. 음모론자들의 주장대로 한국이 만일 정말로 일본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는 작전이 있었다면 이 골을 넣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러 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실축할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골을 넣지 못할 경우에는 각종 의혹에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이 겹쳐지며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논란이 예정돼 있었다. 실패의 대가가 클 수밖에 없는 페널티킥이었다.
그러나 손흥민은 깨끗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적어도 자신만큼은 이 경기에서 일부러 승리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이어진 추가시간에 끝내 3-3 동점골을 허용하며 다시 조 2위로 내려가 결과적으로 16강전에서 일본을 피하고 F조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일부러 지지는 않았더라도 그 경기력은 실제로 매우 떨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그렇다면 이번 한일전 무산은 한국이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맞붙고 싶었어도 못 붙게 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팬들의 관심을 끄는 건 한국과 일본의 정면 대결이다.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 축구의 강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최근 국가대표팀 간 경기에서 한국이 일본에 큰 스코어로 진 경우도 많고 점차 일본에 밀리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한국은 역대 전적에서 일본에 42승 23무 16패로 앞서 있지만 2021년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0-3으로 패했고, 2022년 7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EAFF E-1 챔피언십에서도 0-3으로 연패하는 등 최근 흐름은 좋지 못하다.
일본은 2050년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축구 전 분야에서 세밀한 실행 계획을 세워 진행 중이다. 이런 일본 축구의 저력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중이지만 아시아의 전통 강호를 자처하는 한국은 손흥민 등 스타들을 앞세워 일본을 꺾고 그 우위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한국이 일본을 피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과 질문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위를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면 대결은 벌어지지 않았어도 우승 확률 등에서 이미 축구계에서는 전반적으로 한국보다는 일본의 우세를 점쳐 왔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이 일본을 피해 우승한다 한들, 한국이 앞으로도 꾸준히 일본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들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한국이 일본의 축구 개혁 속도에 뒤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축구가 이 상태로 우승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현 단계 한국 축구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질타이기도 하다. 한국은 남은 경기를 통해 더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를 계속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설령 결승전에서 일본과 맞붙어 승리하더라도, 그 이후에도 개혁과 발전을 위한 과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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