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배 불어난 ‘그림자 조세’ 부담금… “정비하되 재원대책 마련을”[인사이드&인사이트]
영화 보고 여권 만들 때도 징수… 쉽게 걷어 쓸 수 있는 ‘정부 쌈짓돈’
23년새 7조1000억→24조6000억… 기업 “전기료와 별도, 이중과세”
전면 개편 방안 올해 공개 예정… “공익사업 위축 불가피”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91개의 현행 부담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91개 부담금이 실제 얼마나 줄어들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61년 처음 도입된 부담금은 올해 24조6000억 원으로 23년 전보다 3배 넘게 늘었다. 정부는 올해 안에 부담금 전면 개편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부담금은 실제로는 대다수 국민이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내고 있는 일종의 준조세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입장권 가액의 3%가 매겨지는 영화상영관 입장권부과금이 대표적이다. 여권을 발급할 때 1만5000원(10년 유효 복수여권 기준)씩 징수되는 국제교류기여금도 법정 부담금이다. 해외 여행을 갈 때 1만1000원씩 내는 출국납부금도 부담금 중 하나다.》
●1960년대 7개에서 올해 91개로
정부는 1990년 이후 국민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수질, 폐기물, 소음, 해양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부담금이 늘었다고 설명한다. 각종 개발사업에 따른 녹지보전 요구와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한 대중교통 시설 확충, 산업단지 개발과 관련한 공공시설 설치 필요성 등으로 부담금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세금에 비해 징수에 따른 저항이 덜할뿐더러 일반예산보다 훨씬 편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부담금이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담금 수입은 대부분 기금이나 특별회계 등으로 관리되기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쉽고 안정적으로 사업 재원을 확보하는 통로로 쓴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담금을 재원으로 하는 기금 등이 방만하게 운영되거나 논리적 근거가 떨어지는 부담금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2002년부터는 부담금 관리 기본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무분별한 부담금 신설을 막기 위한 법이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부담금 운용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부담금의 존치 필요성을 3년마다 1회씩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2002년 102개였던 부담금 수는 올해 91개로 11개 줄어드는 데 그쳤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부담금은 임시적이거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부과했다가 일몰시켜야 하지만 정부가 편하게 쓸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하면서 장기간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요금에 붙은 부담금 1년 새 50% ↑
실제로 전체 부담금은 비중이 가장 큰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처럼 덩치가 큰 부담금 징수가 매년 자연적으로 늘어나면서 커졌다. 전기요금의 3.7%가 추가 부과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올해 3조2028억 원이 징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조1149억 원에 비해 1조879억 원(51.4%) 늘어난 규모다. 매년 전력 사용량이 늘고 전기요금도 인상되는데 2006년 조정된 3.7% 기준이 19년째 유지되면서 부담금 규모가 계속 커지는 것이다.
석유 등을 수입 혹은 판매할 때 내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의 수입·판매부과금’ 역시 지난해 1조5333억 원보다 2191억 원 늘어난 1조7524억 원이 올해 걷힐 전망이다.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이 늘어나는 데 따른 결과다.
반면 올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 부담금의 규모는 대부분 이보다 훨씬 작다. 환경개선부담금의 경우 노후 경유차 등 부과 대상 차량이 줄면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난해 1831억 원에서 올해 1516억 원으로 315억 원 줄어드는 데 그친다.
영화상영관 입장권부과금 역시 영화상영관 관객 감소로 줄어들 전망인데 지난해 524억 원에서 올해 262억 원으로 축소되는 수준이다. 김 교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의 경우 용도를 특정하지 않으면서 정부가 ‘쌈짓돈’처럼 활용하는 대표적인 부담금”이라며 “이런 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매년 부담금 규모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세성 부담금 폐지하거나 조세로 전환”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8월 ‘법정부담금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연구’ 자료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목적 타당성과 부과 적합성, 사용 적합성 등의 기준으로 부담금 개편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예컨대 영화상영관 입장권부과금의 경우 영화발전기금 조성에 쓰이고 있는데 영화로 인해 수익을 보는 기업 등 이해 관계자가 아닌 일반 국민에게 부과되고 있어 부과 목적에서 타당성을 찾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출국납부금 역시 관광과 질병 유발이라는 행위 원인자를 특정하지 않고 출국하는 모든 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두 사례 모두 원인자 혹은 수익자 부담 원칙이 약화되면서 사실상 일반 국민에게 부과·징수되는 경우”라며 “재정충당 목적의 조세성 부담금은 과감히 폐지하거나 조세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이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집중적으로 인상하고 있는데 부담금까지 이중으로 거둬간다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전력산업기반기금 관련 여유재원이 2009년 2552억 원에서 2021년 3조7770억 원까지 늘어난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기금이 남아도는데도 부담금을 계속 걷는 것은 원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반도체나 철강처럼 전력 수요가 높은 산업의 비중이 큰 나라”라며 “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담금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서는 부담금 축소나 폐지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담금 축소가 결국 세수 감소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재정비에 나서면서 재원 대책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올해 대기배출부담금 등 11개 부담금을 통해 6453억 원을 조달할 예정인 환경개선특별회계의 경우 부담금 수입이 사라진다면 정부가 추가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환경개선 사업을 벌여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담금이 줄어들면 부담금을 재원으로 진행 중인 공익사업의 역할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일부 조정은 가능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세수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도형 경제부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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