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도 결혼 어려운데 ‘영끌’한 투자마저…
대기업에 다니는 장미진(34·가명)씨는 3년째 사귀는 사람이 있지만 결혼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는 “결혼 비용, 내 집 마련 비용, 양육 비용 등을 생각하면 결혼 이후 생활이 막막하다”며 “대기업 정규직 평균 수준의 월급이지만 월세 60만원과 생활비, 부모님 용돈, 각종 비용을 빼면 별로 남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평생 맞벌이해야 하는데, 30대에 출산과 양육에 힘을 쏟아부을 만한 회사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취업을 앞둔 청년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중앙대 4학년인 김치수(25·가명)씨는 두 살 위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지만 결혼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출산은 더더욱 그렇다. 그는 “결혼은 경제적 독립이 어느 정도 돼야 할 수 있을 듯하고, 그 시기가 언제일지 가늠하기 힘들다”며 “취업 뒤 안정적 소득이 생겨도 의식주를 다 갖추기까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해서 둘만 사는 건 조금 모자란 환경에서도 괜찮겠지만, 자녀까지 갖는다면 어려움이 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검색어 ‘청년 희망’이 급상승한 시기는
청년세대는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가졌지만, 동시에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로도 평가받는다. 이들은 결혼과 출산에 윗세대보다 소극적이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매해 최저 수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2024년 1월25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본 청년(19~34살)의 의식 변화’를 보면 뚜렷한 변화가 읽힌다. 2022년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청년 비중은 36.4%로 10년 전(56.5%)보다 20.1%포인트 줄었다. 성별로는 여성(28.0%)이 남성(43.8%)보다 15.8%포인트 적었다. 출산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인 53.%가 ‘자녀를 가질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여성(65.0%)이 남성(43.3%)보다 더 높았다. 전체 설문 대상의 같은 답변(34.7%)에 비해 청년 응답이 18.8%포인트 높았다. 초혼 연령도 2022년 남성은 33.7살, 여성은 31.3살로 10년 전 각각 32.1살, 29.4살보다 많아졌다.
청년층의 결혼·출산에 대한 의식 변화는 경제적 이유가 크다. 청년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주된 이유’를 묻는 말에 ‘결혼자금 부족’(3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뒤를 ‘필요성 못 느낌’(17.3%), ‘출산·양육 부담’(11.0%), ‘고용상태 불안정’(10.2%) 등이 이었다. 성별로 구분하면 미혼 남성은 ‘결혼자금 부족’(40.9%)이 최다였고, 미혼 여성은 ‘결혼자금 부족’(26.4%), ‘결혼 필요성 못 느낌’(23.7%) 등을 나란히 꼽았다.
경제적 사유가 가장 큰 만큼 자산 증식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구글 트렌드로 2020~2023년 구글 검색어 ‘주식’ ‘청년 희망’ ‘코인’ 등을 살펴보면, 2020~2021년 1월까진 주식 검색 빈도가 코인을 앞섰다가 이후엔 코인이 역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년 희망’ 검색 빈도가 주식을 제치고 코인 턱밑까지 다다를 때가 있었는데, 2022년 2월이다. 당시는 청년희망적금 가입 시기였다. 일시적 급상승은 청년층이 자산 형성에 뜨거운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주식·코인 하지만, 예금과 적금의 차이 몰라”
코로나19 당시 미친 듯이 오른 집값 등 자산가격 상승으로 박탈감을 가져왔다. 자신의 처지에 따라 전셋집이나 자가, 빌라나 아파트 등 목표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더 멀어졌다. 소득불평등보다 자산불평등이 더 크고, 자산불평등 정도는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에 달렸다. 그래서 40~60대의 불평등은 소득에선 크지만, 자산은 심하지 않다. 반면 청년층에선 소득보단 주택 유무 등 자산 불평등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났다.
편법도 등장하면서 허탈감을 키웠다. “다른 친구가 청약에 당첨됐는데, 그 친구의 경우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일부러 안 해놓은 거예요. 그리고 아이가 먼저 생겼어요. 그렇게 한부모 가정으로 청약을 받더라고요. 서류상으로 문제가 없고…. 그냥 법대로 솔직하게 에프엠(FM)대로 사는 나만 바보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죠.”(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실태 및 대응방안’)
2023년에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자산 증식에 나선 청년마저 자산 가치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통계청의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청년가구(가구주 39살 이하) 자산은 7.5% 줄어 전체 가구 중 감소폭(3.7%)이 가장 컸다.
그럼에도 청년층 금융지식은 높지 않았다. 청년층 자산 형성에 대해 상담하는 설기욱 서울영테크상담사는 “상담하는 청년 대부분이 주식이나 코인에 조금씩 투자하는데, 예금과 적금의 차이를 모르는 등 금융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상당하다”며 “이들에게 금융·재무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2023년 실시한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를 보면, 20대 점수는 평균 65.8점으로 전체 평균(66.5점)보다 낮았다. 반면 30대(69.0점)는 연령 가운데 점수가 가장 높아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금융지식을 얻고 있음을 보여줬다.
청년기본법 따라 수조원 쏟고 있지만
정부는 2020년 청년기본법을 제정하고, 청년정책 시행계획을 세워 진행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선 2021년 308개 과제에 23조8천억원, 2022년 376개 과제에 24조6천억원, 2023년 390개 과제에 25조4천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청년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대부분 과거에 시행한 정책을 대상이 청년 위주라며 이름을 바꾼 것이고 새롭게 시행하는 정책은 드물다”며 “청년 자산 형성 등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정책 조정 기능 위주인 국무조정실이 아니라, 부처를 신설해 정책을 고민하고 예산을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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