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 대통령 집안 전쟁…필리핀 ‘권력 동맹’ 붕괴

김서영 기자 2024. 1. 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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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아버지처럼 축출”
대선 땐 ‘한 팀’ 두테르테
마르코스 대통령 맹비난
선거·개헌 갈등 주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28일 수도 마닐라에서 ‘새로운 필리핀’ 선포 행사 중 연설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남부 다바오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FP·AP연합뉴스

필리핀 정계를 양분하는 마르코스 집안과 두테르테 집안의 분열상이 깊어지고 있다. 한때 ‘하나의 팀’으로 뭉쳤던 두 집안이 다가오는 선거와 개헌 문제를 둘러싸고 등을 돌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28일 현지 매체 래플러와 AFP통신에 따르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이날 남부 다바오에서 열린 집회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을 겨냥해 “당신은 위험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당신의 아버지가 겪었던 일(축출)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마르코스 대통령이 6년 단임제인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한다는 의혹을 두고 한 비판이다. 개헌을 계속 진행했다간 20년 독재 끝에 1986년 ‘피플파워’로 쫓겨난 아버지 마르코스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현재 헌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만약 고집을 부린다면 당신은 말라카냥(대통령 관저)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그의 아들인 세바스티안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 또한 마르코스 대통령을 향해 “게으르고 무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범죄 대응책을 완화하는 바람에 범죄가 늘었고, 필리핀이 친중에서 친미로 돌아서며 안보가 위험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치와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사퇴하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집안과 마르코스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서 같은 배를 탄 ‘한 팀’이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는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뛰었으며, 현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직도 맡고 있다.

이들은 지난 대선 직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해 내년 중간선거, 개헌, 2028년 대선 등을 앞두고 세력 다툼을 벌이며 본격적으로 갈라섰다. 각자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한 탓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임기 제한을 없애는 개헌에 성공할 경우 다음 대선에서 세바스티안 두테르테 시장의 출마 전망에 영향을 미친다.

두 집안의 갈등에 진보 정당 아크바얀은 성명을 내 “지배 엘리트들 사이의 왕조 전쟁은 단지 그들의 정치적 왕조와 이익을 공고히 할 뿐, 필리핀 국민의 긴급한 요구는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 프랑코 필리핀대 교수는 “이는 더 이상 ‘한 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라고 AFP에 밝혔다.

하노이 | 김서영 순회특파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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