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영석은 축제에서 ‘밑바닥’을 거론했나

박강현 기자 2024. 1. 2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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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베테랑 신영석(38)은 지난 27일 열린 프로배구 올스타전(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이른바 ‘공중 부양’ 춤인 슬릭백(slick back) 세리머니를 선보이고, 서브 에이스 등을 꽂아 넣으며 그야말로 ‘맹활약’했다. 남자부 세리머니상과 최우수선수(MVP)를 휩쓸며 ‘2관왕’ 영예를 안았다. 팬 투표에서 2만9031표를 얻어 4시즌 연속 남자부 최다 득표자로 거듭난 그는 배구 축제에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절박한 모습마저 엿보였다.

지난 27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2023-2024 도드람 V리그 올스타전'에서 남자부 MVP를 받은 한국전력 신영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시상을 마치고 기자실에 들어온 신영석은 “슬릭백 춤은 어제 1시간가량 연습했다. 내게 이런 재능이 있는줄 몰랐다”고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리곤 이내 사뭇 진지하게 배구의 ‘미래’에 대한 진심을 전했다.

그는 “저번 대표팀에 많은 배구 팬들께서 실망하셨다”고 운을 떼며 “‘왜 배구를 보러 와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한국) 배구가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 선수들이 남자배구를 이끌어갈 선수들이라고 봐요. 이 후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남자배구가 올림픽으로 가는 꿈을, 어린 선수들이 펼쳐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시안게임에서 두 차례(2010·2014년) 동메달을 따는 등 리그와 대표팀을 오가며 산전수전을 겪은 그의 솔직한 말에 모두 숙연해졌다.

지난 27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올스타전에서 신영석(오른쪽)과 임명옥이 슬릭백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실 이날 올스타전에서 남녀 선수들이 정성껏 준비해 온 안무를 선보일 때마다 ‘배구가 이렇게 한가하게 춤을 추고 있어도 되나’란 그림자가 경기장에 드리운 듯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주변 기자들은 “춤을 너무 자주 열심히 춘다”라며 애써 말을 흐렸다.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리그 인기와 별개로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한국 남자배구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61년 만의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여자배구도 베트남에 패하는 등 5위로 대회를 마쳤다. 아시아를 호령한 건 옛말이다.

남녀 배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동시에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1958년 도쿄 대회 이후 65년 만이었다. 올해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도 남녀 배구 대표팀의 자리는 없다. 특히 남자 배구는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올림픽 구경도 못하고 있다. 여자배구는 그래도 2012년 런던 대회와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썼다. 신영석의 말대로 남자배구는 여자배구보다 먼저 ‘밑바닥’을 찍고 있는 형국이다. 작심 발언을 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내 프로배구 리그를 관장하는 주체는 한국배구연맹(KOVO)이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고 대표팀을 관리하는 기구는 대한배구협회다. 협회는 ‘항저우 참사’ 이후 작년 11월에 ‘배구대표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청회’를 진행했다. 당시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정례화, 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의 소통 강화 등과 같은 대책이 제시됐다. 이후 협회는 고교팀 및 프로팀 감독, 연맹 관계자 등으로 이뤄진 남녀 경기력향상위원회 구성원을 공개하며 배구계에 몸담고 있는 모두와 머리를 맞대 대표팀 체질 개선과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해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진천선수촌에서 공개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30일부터 리그가 재개되고 조만간 협회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공석이 된 남녀 배구 대표팀 사령탑 물색에 나선다. 협회 관계자는 “(대표팀 감독) 공모를 다음 달 1일부터 할 예정이다. 국내외 지도자들에게 열려있다. 3월 중순까진 (선발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2028·2032년 올림픽을 바라보고 육성에 강점이 있는 지도자, 요즈음 세대와 눈높이가 맞는 그런 지도자를 선임하고자 기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는 결국 국제경쟁력과 비례한다. 아무리 리그 인기를 위해 KOVO가 노력해도, 궁극적으로 대표팀 성적이 반등하지 않으면 배구의 앞날은 어둡다고 배구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리그 인기와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이 동반 상승하려면 대표팀 운영을 어느 한쪽이 독점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하게 떨어질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를 수도 있는 법. 연맹, 협회, 아마추어 기구가 의기투합하면 신영석이 말한 그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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