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외면 말아달라” 용산 향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오체투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역 인근에서 대통령실까지 1.4㎞ 남짓. 45명의 유가족과 종교인이 북소리에 맞춰 오체투지를 이어갔다.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닿은 이마가 검게 물들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종교인들이 국무회의를 하루 앞둔 29일 이태원역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오체투지로 행진하며 “10·29 이태원참사특별법 즉시 공포”를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국무회의에서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안(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터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오체투지에 앞서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역 1번 출구 옆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 규명 없는 피해자 지원책이 아니라 진상조사기구를 설립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아낌없이 ‘지원’해달라”고 촉구했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부디 (유가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달라”며 “특별법 공포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159개의 별과 하루아침에 이들을 잃고 매일매일을 고통 속에 방황하는 가족들의 아픔을 해소해달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고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죽음에 한 치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원인과 진실의 규명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유가협은 이날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와 유가족 지원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 설립을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유가족을 위로하는 방법이고 주권자 국민들이 내리는 준엄한 명령”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끝내 국민의 명령을 거부하면 진실을 바라는 시민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체투지 행진에는 유족 70여명과 종교 시민사회계 30명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이날 오체투지에 참여한 고 문효균 아버지 문성철씨는 “몸이 힘든 것보다 법 제도 개선이 되지 않아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다”며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특별법이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없다”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이태원참사특별법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고 최유진 아버지 최정주씨는 “8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9번은 왜 안 하겠냐”고 비관하면서도 “(윤 대통령) 부모된 마음을 이해한다면 저희를 지금 당장 부둥켜안아달라”고 했다.
이날 행진은 대통령실 인근 도로까지 이어졌다.
당초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 100m 경계 내인 점과 정부 기능·군 작전 수행 우려 등을 이유로 집회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이 유가족의 집회금지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 집회가 가능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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