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법원 스스로 사법 독립 포기 선언…정의에 반하는 판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29일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법원 스스로 사법의 독립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이날 논평을 내고 “사법농단 사건의 재발 방지는커녕 양 전 대법원장 등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범죄행위를 벌할 수 없다고 선언한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민변은 “(1심 판결은)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권리 침해를 야기한 직권행사가 존재함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사법농단이 실재했음에도 형식적인 법리 해석과 적용으로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범죄성립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단은 구체적 정의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했다.
재판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에 대해 민변은 “재판 독립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의 당연한 요청으로 법치주의의 중핵을 이룬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재판 독립에 관한 헌법과 법률의 보호가 재판 개입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했다.
이어 “헌법이 재판 독립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개별 재판에 개입하기 위해 실행한 구체적 행위를 지시할 외관상의 사법행정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면 일반적 직무권한이라 볼 수 있다”며 “대법원이 수사와 감사 등에 관여한 고위공무원에게 일반적 직무권한을 인정하면서도 재판에 개입한 고위 법관들에게만 유독 인정하지 않는 해석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민변에 따르면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제5차 정부보고서 심의 최종견해에서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에 대한 적절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효과적으로 조사, 기소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로 제재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민변은 “(사법농단 사건은) 사법의 독립성 침해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당사자들의 기본권 침해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민변은 이어 “책임성의 담보 없이는 사법의 독립성은 확보할 수 없고, 이번 판결로 사법농단은 더욱 은밀한 방식으로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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