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는 기업편, 진보지는 노조편? "기계적 균형이라도"
한국 언론의 노동 보도가 ‘발생’과 ‘정쟁’ 중심이며, 매체 성향에 따라 사용자(기업)나 노동자(노동조합) 일방의 관점만을 반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데이터로 확인됐다.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안수찬 교수 연구팀은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공동 기획해 지난 1년간 국내 주요 신문·방송의 노동 보도를 모니터한 결과를 29일 열린 토론회에서 공개했다.
연구팀은 분석 대상으로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보도를 택했다. 2013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게 내려진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발단으로 추진된 노란봉투법은 2015년 4월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지 9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재이송됐고, 최종 부결됐다. 장기 의제에 노사가 첨예하게 맞선 “매우 갈등적 의제”였던 만큼 “정확한 사실과 함께 풍부한 맥락” 전달은 필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우선 보도량부터 적었다. 분석 대상인 8개 신문(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한국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이 2023년 한 해 동안 지면에 보도한 노동조합법 개정 관련 기사는 모두 185건. 전체 노동 기사의 5% 수준에 불과했다. 이들 보도조차 특정 시기에 집중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던 2월과 국회 본회의 법안 처리를 결정한 6월, 그리고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된 11월에 보도가 집중됐고 그 외의 시기는 대체로 잠잠했다. 연구팀은 “발생 사안만 좇으면서, 냄비보도와 무보도를 오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85건의 보도 중 대부분(83%)이 발생 중심의 ‘사건 기사’였고, 법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맥락 중심 기사는 17%에 불과했다. 이처럼 단순 정보를 전달하는 사건 중심 기사는 기계적 중립 논조를 띠는 경우가 많은데, 노동 보도에선 상반된 특성이 나타났다. 어느 일방의 관점만 담은 기사가 절반에 가까운 43.8%(81건)에 달했다. 그런 기사의 비중은 한국경제(70.6%)가 가장 높았고, 매일경제(52.4%), 조선일보(44.4%) 순이었으며 모두 친기업 관점이었다. 이들 신문이 기사에 인용한 취재원도 사용자가 노동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경향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노동자 취재원 비중이 훨씬 높았다. 다만 한국일보는 ‘친기업(정부여당·사용자)’, ‘친노동(야당·노동자)’ 취재원 안배와 보도 관점에서 비교적 균형을 갖춘 편이었다.
프레임별로 보면 조선일보와 경제지는 “강력한 기업 관점”을, 경향신문은 “강력한 노동 관점”을 드러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정치 중심”을 보였다. 노동정책 보도를 ‘여야 정쟁 프레임’으로 보도(37.84%)하는 건 8개 신문 평균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경향이기도 했다. 방송(지상파·종편·보도채널)은 정쟁 보도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57.14%). 연구팀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이슈일수록 정쟁 프레임이 아닌 ‘정책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연구팀은 몇 가지 보도 관행의 개선을 주문했는데, 그중 “최소의 원칙”으로 거듭 강조한 게 ‘기계적 균형’이다. 안수찬 교수는 “대다수 노동 이슈는 갈등적이므로 기계적 균형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면서 “노동 이슈에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도 기사를 통해 말할 수 있게 하라”고 했다. 그는 “노조를 대변하는 언론이 정당화되기 시작하면 자본을 대변하는 언론도 정당화되고 이들이 데칼코마니처럼 공존하게 된다”며 “선전과 선동 방식으론 사회적 타협이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제도 개선 등 현실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혜원 시사IN 기자도 “갈등이 아닌 토론을 매개할 언론이 되기 위해선 언론 스스로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자기반성을 담아 말했다. 책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의 저자이기도 한 전 기자는 “보수언론/경제지는 사용자에 아픈 질문을 할 수 있는가, 반대로 진보언론은 노동조합에 아픈 질문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할 때”라며 “보수언론/경제지가 노동자를, 진보 언론이 사용자를 동료시민으로 과연 여기고 있는가 하는 점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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