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닥길 때 일본은 ‘역대급 호황’…이제서야 따라한다는데 효과는
일본 증시 개혁 벤치마킹
‘상장폐지’ 등 규제 수단 없어
국내 금융당국도 이를 벤치마킹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지만, 업계에서는 정책 실효성을 위해서는 당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3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한국의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 해당하는 프라임, 스탠더드시장에 상장한 업체 중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인 3300여곳에 주가 부양을 위한 개선책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시하도록 요구했다.
PBR은 기업이 보유한 자본 대비 시가총액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1보다 크면 해당 기업이 고평가되고 있다는 의미지만 반대로 작으면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들은 PBR 현황 분석과 목표 자기자본이익률(ROE), 주주환원 방안, 성장 전략 등을 기재해야 한다. 거래소는 만약 목표대로 해당 기업이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상장폐지 가능성도 열어 놓아 기업이 주가 부양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강제했다.
거래소는 올해부터 상장사별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등을 통해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재한 기업들의 명단을 매달 공표하기로 하고, 이달 처음으로 공개를 시작했다.
또 해외 투자자를 일본 증시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본 우량 기업을 모은 프라임 시장에서도 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우수한 150개 기업의 시가총액을 추종하는 ‘JPX 프라임 지수’도 도입했다.
효과는 컸다. 2022년 말 기준 51%에 달했던 일본 프라임시장 상장사 중 PBR 1 미만 기업 비중은 지난해 말 44%로 줄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일본 상장기업의 예상 배당액(15조2200억엔)은 역대 최대치였던 전년보다 1000억엔 늘어난 것으로 집계돼 기업들이 배당을 통한 이익환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도쿄증권거래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PBR 1 이하인 공시대상기업 3300여곳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1115곳이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주주를 위한 경영 개선계획을 기재했거나 할 예정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금융당국은 일본과 거의 유사한 주가 부양 정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하고 내달 중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인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기재하도록 할 계획이다. 공시우수법인을 선정할 때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적어낸 기업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또 주주가치가 높은 기업들로 구성된 상품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장도 추진할 예정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당국의 큰 방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실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기재해야 하는 기업을 코스피·코스닥 전체 기업으로 확대하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계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상장폐지 수준의 페널티를 부과해야 정책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계획 기재 대상이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로 한정돼 있는데(2026년 코스피 전체 상장사로 확대),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거래가 활발한 코스닥 시장 경우 이 같은 의무를 피해갈 수 있는 만큼 거버넌스 개선 노력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남우 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 경영진 뿐 아니라 투자자들도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거의 보지 않는데 여기에 계획을 담도록 하면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며 보고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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