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덮고 “민생”…여론 진화하는 윤·한
“당정 협력” 강조…화합 행보
‘김건희 리스크’는 언급 안 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만나 민생 중심의 당정 협력에 뜻을 모았다. 윤·한 갈등의 종결을 시도하면서 화합을 강조하려는 행보다.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대응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당정은 밝혔다. 사태를 촉발한 핵심 쟁점을 덮는 형식으로 갈등을 매듭지으려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 위원장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과 차담을 이어가며 현안을 논의했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과 한오섭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까지 6명이 2시간 동안 함께 식사한 뒤 윤 대통령 집무실로 옮겨 37분간 차담을 나눴다. 지난달 26일 한 위원장 취임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식사를 함께한 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에게 “수고 많습니다”라고 첫인사를 건넨 뒤 오찬장 방문이 처음인지를 묻고 창가로 안내해 주변을 소개했다. 이어 시작된 오찬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개선을 위해 당정이 배가의 노력을 해야 한다”며 당정 협력을 강조했다고 이 수석이 서면 브리핑에서 밝혔다.
대통령실과 윤 원내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주택 문제와 철도 지하화를 비롯한 교통 문제 등 민생 현안이 주된 의제가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확대 시행과 관련해선 영세사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국회에서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참석자들은 잇따른 정치인 테러에 대한 우려를 공유했다. 윤 대통령은 관계 부처에 신속히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오찬은 최근 불거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갈등의 잔불을 끄고 ‘원팀’ 기조를 회복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총선을 앞두고 분열을 막자는 공감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공동 행보를 하며 갈등을 임시 봉합한 뒤 엿새 만에 오찬 회동으로 완전 진화에 나선 셈이다. 두 사람은 지난 21일 윤 대통령이 이 실장을 통해 사퇴 요구를 전하고 이를 한 위원장이 공개 일축하며 맞부딪쳤다.
여권 수뇌부가 8일간의 갈등 정국을 매듭짓는 모습은 ‘악수는 공개적으로, 쟁점 논의는 비공개로’에 가깝다. 재난 현장 공동 행보와 오찬 등 화합 행보는 공개하면서도 갈등의 원인이 된 쟁점들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두고 한 위원장이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고 미묘하게 다른 목소리를 낸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한, 갈등 ‘출구전략’ 찾아도…총선 공천 ‘뇌관’은 여전
오찬·차담 ‘2시간37분 대화’
윤 대통령 직접 관련 언급 뒤 여당에서 옹호 ‘교감’ 관측
공천 놓고 갈등 정리 관건…한동훈 ‘정치력’ 다시 시험대
대통령실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사천’ 논란을 문제 삼은 데도 김 비대위원이 김 여사 공개사과를 주장해온 인사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핵심 쟁점인 두 이슈는 이날 논의되지 않았다고 양측은 밝혔다. 윤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여사 의혹 관련 대응 방안 논의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오늘은 세 문제(민생, 중처법, 정치인 테러)만 얘기했다”면서 “민생 문제, 민생 관련 국회 상황 얘기를 주로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김 여사 문제 등은) 언급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김 비대위원 거취나 공천 문제 등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찬 의제가 아니더라도 김 여사 의혹 대응 방식을 두고 당정 간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윤 대통령은 방송사와의 신년 대담에서 이와 관련한 언급을 하는 것을 포함해 입장 표명 여부와 방식을 검토 중이다. 윤 대통령의 공개 설명 뒤 여당이 이를 옹호하는 형태로 이슈 마무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위원장도 김 여사 이슈와 관련해서는 꼬리를 내렸다. 한 위원장은 ‘서천 회동’ 이후에는 김 여사 대응 관련 공개 입장 표명을 자제 중이다. 김 비대위원도 마찬가지다.
윤 원내대표는 “어떤 현안이든 수시로 소통하고 있어서 특별한 자리를 만들어서 논의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갈등의 정치적 파장은 유동적이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인 만큼 여권 내 논란은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의 공개 충돌로 ‘윤석열 아바타’ 꼬리표를 일부 떼어내고 차별화 효과를 봤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사퇴 경고 후 김 여사 관련 이슈에 대해 입을 닫고 여론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면 수직적, 종속적 당정관계에 따른 비판 여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높은 부정적 평가를 고려할 때 당정 일체를 강조하는 것이 선거에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공천 과정이 본격화하면서 향후 공천을 중심으로 이견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갈등 사태의 최종 종결 방식에 따라 한 위원장의 정치력도 다시 평가대에 설 것으로 보인다.
유정인·유설희·문광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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