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금개혁의 정치실험

기자 2024. 1.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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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도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연금개혁을 위한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 얼마 전 연금특위는 시민 500명을 시민대표단으로 선발, 토의를 거쳐 연금개혁안을 선택하도록 하는 ‘공론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하였다. 연금정치의 새로운 실험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시민이 주체가 되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다면 이는 숙의민주주의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특위는 2~3월에는 최종안을 발표할 수 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 퇴행 징후가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노동조합, 특히 양대 노총을 기득권 카르텔이라 규정하고 사회정책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있다. 일례로 정부는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의사결정기구에서 양대 노총의 대표권을 박탈하고 있다. 반면 시장권력을 가진 재벌은 정치무대 전면으로 돌아오고 있다. 거대자본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때 노동조합연맹의 힘은 약화될 때 더 나은 분배와 복지를 위한 사회적 타협은 더욱 어려워진다. 또한 전년에 비해 2023년 언론의 자유지수는 하락하였다.

그럼에도 새롭게 시도되는 연금개혁 정치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온전히 담으면서 작동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연금개혁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국회와 시민대표단을 넘어 충분히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대표단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논의하고 있으니 다른 사회적 논의는 불필요하다는 접근은 곤란하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 정치적 책임을 피해가는 이유가 되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시민대표단은 연금개혁에 관한 공론장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더욱 투명하고 폭넓게 시민사회와 연결되어야 한다. 연금개혁은 모두의 노후에 관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둘째, 정치적 독립성 및 중립성과, 연금개혁에 관한 뚜렷한 입장 차이가 모두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론화 과정이 설계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주도하는 공론화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은 정치적 독립성은 물론 연금개혁에서 중립적 입장을 가진 이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는 상식이다. 반면 논의에서는 기존 연금논쟁의 성과와 입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시민대표단 토의에 앞서 이해관계자들이 논의 의제를 선정한다. 여기에서 노동배제적 정치가 반복되어 노동조합연맹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입장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존에 배제된 특고노동자가 대표성을 갖고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시민을 중심에 놓은 연금개혁 논의는 삶에 뿌리를 둔 폭넓은 접근이 되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연금개혁은 빠른 기술변화와 인구변화 속에서 우리가 미래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 사회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이다. 시민이 체감하는 한국 연금제도의 위기는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이란 좁은 의미의 재정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노후보장의 위기, 불안정고용 확산에 따른 연금 가입의 위기, 그리고 신뢰의 위기 또한 광범위하다. 이러한 문제를 보험료율, 수급연령 등 연금제도 일부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연금제도 변화만으로 연금개혁은 불가능하다. 연금개혁 논의는 고용 안정과 노동시간 및 기업운영 방식의 변화, 생애주기 재편, 가족 재구조화 등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의 통합적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 연금정치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 과정이 정치적 영향력 차이, 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하여 시민들에게 또 다른 좌절감을 안겨주기보다는 민주적 방식으로 연금문제 이면에 있는 저출생, 고용, 성장, 분배, 나아가 삶의 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랄 뿐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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