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는 폭력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임박했다고 전해진다. 여당이 건의한 거부권을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것이 예상된다. 이 글을 쓰는 건 이미 늦은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사람들을 다시 절망케 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쓴다.
박근혜도 그랬다. 그는 겨우 열일곱 살 아이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이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불법사찰과 감시, 공권력을 동원해 애도조차 못하도록 했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국회에서 제정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 했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하면서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려 하자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강제해산까지 시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유가족들을 탄압했다. 그 결과는 탄핵촛불로 타올랐고, 결국 그는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권좌에서 끌어내려졌다.
온몸을 땅에 던지며 하얀 눈밭을 기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다시 대통령실을 향해 기어간다. 삭발을 하던 희생자 엄마의 얼굴에 흘러내리던 한 줄기 눈물,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159명을 기억하는 1만5900배를 올리는 유가족들의 모습. 이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 지난 1월27일,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집회 자리에서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과거에 대통령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경고했다.
‘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첫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거부하는 순간, 정부가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이고, 그 범죄를 보호한 게 대통령임을 자인한 것입니다. 특별법을 거부한다면 진심으로 정권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만 싸우는 게 아니다. 지난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를 막기 위해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국회에서 밤샘 농성을 했다. 15주기를 맞아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책임자 김석기의 처벌을 요구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요구하며 3년째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다. 민주유공자법은 여당의 퇴장 속에 정무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올라가 있다.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은 31일 저녁 국회 본청에서 죽어간 자식들의 영정을 들고 집회를 한다. 31일 저녁에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과거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4·16재단 부설 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도 첫발을 내딛는다. 민주주의와 생명·안전을 위해 유가족들은 곳곳에서 싸운다.
파커 J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헌사를 미국에서 정치적 테러로 죽어간 소년, 소녀들에게 바쳤다. 그 헌사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어린이, 노인, 정신질환자, 가난한 사람 그리고 노숙인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고통을 겪을 때 우리 민주주의의 성실성도 고통을 겪는다.” 맨 먼저 고통을 받는 이들에 한국에서 특별하게 유가족들을 추가해야 한다.
“나는 이것 하나는 알고 있다. 폭력은 영적인 형태에서 물리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연민의 실패, 공감과 존중의 결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비정한 권력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나도 이것 하나는 알고 있다. 권력이 저지르는 폭력에 맞서는 유가족들의 투쟁은 언제나 역사의 정방향을 향한다는 것을.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비웃는 일은 폭력임을.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든 자신들이 싸운다고 해서 결코 죽은 이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다시는 자신들과 같은 유가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싸운다는 것을. 그런 마음과 용기와 행동이 세상을 바꾸어왔고, 결국에는 폭력을 휘두른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을.
고단한 싸움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비정한 권력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이태원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역사의 교훈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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