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모비 철거 강행

강구열 2024. 1. 29. 19:5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당해 끌려온 조선인 수천 명 중 상당수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일본 군마(群馬)현의 시민단체 등이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추도비가 29일 철거 수순에 들어갔다.

'군마의 숲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의 모임' 등 시민단체,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군마현은 이날 철거 작업을 개시해 다음달 11일까지 끝마칠 계획이다.

군마현 추도비 철거를 계기로 일본에 있는 비슷한 성격의 추도 시설들에 우익 단체들이 끈질기게 시비를 걸며 역사 지우기를 시도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월 11일까지 완료 방침 밝혀
‘강제연행’ 언급 빌미 밀어붙여
시민단체 “혐오범죄 가담” 비판
日우익 ‘역사 지우기’ 지속 우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당해 끌려온 조선인 수천 명 중 상당수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일본 군마(群馬)현의 시민단체 등이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추도비가 29일 철거 수순에 들어갔다. 발전된 한·일 관계의 상징 단어인 ‘기억’과 ‘반성’, ‘우호’가 새겨진 이 추도비의 철거는 일본 우익·혐한(嫌韓) 세력의 ‘침략 역사 지우기’ 성공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어 우려된다.

군마현 당국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이날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를 시작했다. ‘군마의 숲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의 모임’ 등 시민단체,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군마현은 이날 철거 작업을 개시해 다음달 11일까지 끝마칠 계획이다.
日 시민 “철거 반대” ‘군마의 숲 조선인 추도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의 모임’의 이시다 마사토 대표가 29일 군마현 마에바시시의 현청 앞에서 현 당국의 현립공원 내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 추도비 철거에 반대하는 표어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현립공원인 ‘군마의 숲’ 내에 위치한 추도비의 모습. 마에바시·다카사키=연합뉴스
추도비는 일본 시민단체가 한반도와 일본 간 역사를 이해하고 양측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2004년 4월 다카사키시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설치했다. 이곳은 과거 일본 육군 화약공장이 있던 곳으로 1974년 시민공원으로 바꿔 개장했다.

추도비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적혀 있고,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추도비를 둘러싼 논란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도 모임에서 “강제연행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 발언을 일본 우익 세력이 문제 삼은 게 발단이었다.

군마현은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추도비 설치 허가를 내주었는데 이 발언으로 약속을 어겼다는 게 우익 주장이었다.

군마현은 우익의 주장을 받아들여 연장 설치를 불허했고 재판 끝에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지방자치단체 결정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군마현의 철거 요청을 시민단체가 거부하자 ‘행정 대집행’으로 이날 철거에 들어갔다.

군마현은 추도비를 지난달까지 철거해 달라고 시민단체에 요구했으나 철거가 이뤄지지 않자 시민단체를 대신해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는 “추도비를 공원에 두는 것은 공익에 어긋나기 때문에 지사로서 결단을 내렸다”며 “규칙에 위반하기 때문에 철거를 결정한 것이지 추도비를 ‘반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군마현은 행정 대집행으로 철거를 마친 뒤 약 3000만엔(약 2억7000만원)의 비용도 추후 청구하겠다고 시민단체에 통보했다.

군마현 추도비 철거를 계기로 일본에 있는 비슷한 성격의 추도 시설들에 우익 단체들이 끈질기게 시비를 걸며 역사 지우기를 시도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군마현이 추도비 철거를 대신 집행하는 것은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하는 역사부정론자의 혐오 발언, 혐오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후지이 마사키(藤井正希) 군마대 교수도 “추도비가 철거되면 결과적으로 역사 수정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조선인 추도 시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가 다른 현에서도 있어서 철거가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 정부는 군마현의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수수방관하는 입장을 취했다.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군마현이 그렇게 판단한 것”이라며 입장 표명을 회피했다. 추도비 철거가 역사 수정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고, 다른 추모 시설의 존폐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군마현이 현립공원 부지에 설치를 허가한 시설에 관한 것으로, 자세한 내용은 군마현에 문의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