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군마현 한국인 추도비 철거, 일본은 ‘역사지우기’ 멈추라
일본 군마현에 20년 전 세워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가 헐리게 됐다. 군마현 당국은 29일 일본 시민단체가 한·일 간의 아픈 역사를 기리고 양국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2004년 현립공원에 설치한 조선인 추도비 철거작업에 돌입했다. 일본 전역에 150여개에 달하는 조선인 추모비가 있지만 지방정부가 철거에 나선 것은 초유의 사태다. 아베 신조 정권에서 본격화된 일본의 ‘역사지우기’가 지방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와 참담함을 느낀다.
추도비는 과거 군마현 광산과 군수공장 등에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 모금으로 건립됐다. 군마현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6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추도비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이, 뒷면에는 “조선인에 대해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입힌 역사 사실을 깊이 새기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바란다”는 글이 쓰여 있다.
일본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이 추모비가 수난을 겪게 된 것은 2012년 추도제에서 한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한 걸 우익단체들이 문제 삼으면서다. 현 당국이 추도비 설치를 허가하면서 붙인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위반했다는 우익들 주장을 당국이 받아들여 설치 연장을 불허한 것이다. 발언이 문제가 되자 시민들은 10년 이상 추도식을 열지 않는 등 자제했지만, 일본 법원마저 우익들 손을 들어줬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 언급을 빌미 삼아 철거를 요구한 우익단체들도 문제지만, 터무니없는 주장을 수용해 철거를 강행한 현 당국 태도도 극히 유감스럽다. 이렇게까지 해서 역사를 지우고 싶은 건가.
이번 철거가 일본 전역의 조선인 추도비·위령비들에 대한 우익들의 공격 신호탄이 될까 우려된다.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커녕 미화·분식에 열을 올리는 ‘역사수정주의’ 폭주가 두렵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데도 외교부는 “이 사안이 양국 간 우호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가 일본이 마음껏 ‘역사지우기’에 나서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유사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이번 일을 그냥 넘겨선 안 된다. 정부는 일본 정부에 엄중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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