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가장 우울한 나라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1920~1994)는 한평생 마음대로 살았다. 주정뱅이, 바람둥이, 노름꾼이었다. 묘비엔 ‘애쓰지 마라’(Don’t Try)라고 새겨넣었다. 그런데도 그는 서점에서 시집이 제일 많이 도난당하는 시인이다. 부코스키는 성공 따위에는 신경을 끄고 살았다. 그에겐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이 있었다.
야망 없는 삶이라니,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부코스키 같은 인물이나 넘볼 수 있는 경지 아닌가. 작가이자 크리에이터 마크 맨슨은 책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신경 끄기’ 모델로 부코스키를 꼽았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에 우울하다는 사람들에게 그는 ‘엉망진창이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신경 끄기부터 해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그만큼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이다. 특히 남 신경 쓰느라 우울한 한국인들에게 와닿는 얘기다.
맨슨이 지난 22일 자신의 유튜브에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하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한국 여행기가 화제다. 이 영상에서 맨슨은 한국을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골병든 나라로 진단했다. 그는 한국이 “유교주의와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대화한 결과 엄청난 스트레스와 절망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개인의 실패가 집안의 수치와 연결되고, 권위적인 직장문화 등이 젊은층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과 우울이 대물림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들킨 듯해서 그의 지적이 아프다.
한국이 행복하지 않은 건 국제 지표에서도 입증된다. 한국은 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풍요로운 나라가 됐는데도 마음 건강은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에선 “좋은 학교만 들어가면” 끝날 줄 알았는데 취업은 힘들고, 결혼도 내 집 마련도 언감생심이다.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중장년층도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우울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아닌가.
그래도 맨슨은 한국인의 강점으로 회복력을 꼽았다. 우리가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는 게 뭐라고, 위험신호가 깜박인다면 질주를 멈춰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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