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이혼 프로, 자녀에겐 위험한 몰카”[스경연예연구소]

강주일 기자 2024. 1. 2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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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부모의 가상 이혼으로 인해 어린 자녀의 불안이 유발되는 장면은 심각하게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성인과는 달리 (아이들은) 가상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기 보다는 매우 불안했으리라 생각됩니다.”

29일 자신을 아동심리상담사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이 MBN 예능 ‘한 번쯤 이혼할 결심’ (이하 ‘이혼할 결심’)시청자 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다.

전날 방송된 ‘이혼할 결심’에서는 처가살이 중인 재일교포 축구 선수 출신 정대세·명서현 부부가 가상 이혼을 결정하고 자녀들에게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소식을 알리는 모습이 담겼다.

결혼 10년차이자 처가살이 중인 정대세·명서현 부부가 가상 이혼을 결정하고 분가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MBN ‘한번쯤 이혼할 결심’



명서현은 10살 아들에게 “엄마, 아빠가 집을 하나 또 샀다. 엄청 좋겠지? 여기도 우리 집이 있고, 저쪽에서 아빠 집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들은 “어떠냐”는 질문에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다 고개를 저으며 “슬프다”라며 싫다는 자신의 의사를 전한다.

그럼에도 명서현은 활짝 웃으며 “떨어지는게 아니다. 전혀 슬퍼할 것 없다”고 다독였다. 정대세 역시 “아빠, 엄마가 사는 집이 하나 더 생겼으니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정대세는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함께 잠을 자자고 말한다. 부자는 늦은 밤까지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눴고, 정대세는 아들에게 “아까 집이 하나 더 생겼다는 말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고 아들은 “집 사지말라”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다. 왔다 갔다 (하기)싫다”며 아빠 품으로 파고 들었다.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출연진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아마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MBN ‘한번쯤 이혼할 결심’



정대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들이 오죽하면 그런 말을 꺼냈겠냐. 진짜 속마음이지 않나”라며 고통스러운 마음을 드러내며 눈물을 쏟았다.

정대세 부부의 아픈 마음과 별개로 시청자들은 커뮤니티와 SNS등에 아이의 심리에 대해 걱정하는 의견을 쏟아냈다. 비록 사실이 바탕이 되긴 했지만, 방송 촬영이고 가상 이혼이라는 점이 합의가 된 상태이지만 아이에겐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아동심리상담사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해당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 “관심을 가지고 방송을 잘 보고 있다면서도 다만 자녀와 관련하여 너무 우려가 되어 글을 남긴다”면서 “촬영 전 후에 어떠한 조치가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성인과 달리 가상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기 보다는 매우 불안했으리라 생각된다”면서 “또한 부모가 이를 자녀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언어가 아닌 ‘집을 하나 더 사서 따로 살게 되었다’는 애매한 말로 표현되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부분이 밝게 잘 표현했다고 그려지고 있어 시청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얻게 될까 우려도 됐다”고 했다.

이어 글쓴이는 “이혼을 다루는 프로그램인 만큼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적절한 부모의 태도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가짜로 경험해보고자 하는 어른들의 호기심으로 인해 자녀가 희생되지 않았으면 한다. 방송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신중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아이들에게 너무 위험한 몰래 카메라가 아닌가?”라면서 “제발 아이들을 이런 위험한 일에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MBN ‘한번 쯤 이혼할 결심’



그는 “제 경우 부모님이 싸우기만해도 이혼하실까 너무 슬펐고, 옛날 ‘장미의 전쟁’(부부관련 재연 프로그램)에서 부부싸움하는 걸 자식들이 보는 장면에선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안하고 맘 아프기도 했다”면서 “지금 성인이 됐지만 심적으로 불안감을 갖고 있는데, 정대세씨의 자녀도 많은 불안감이 생길수도 있는데 자녀들까지 가상 경험을 해보진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아이들도 부모님의 가상 이혼에 동의한 것인가? 아이들만 너무 불쌍하다”라고 토로했다.

시청자게시판의 경우 방송사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을 해야 하고 실명 댓글을 달아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다. 제작진은 해당 프로그램의 공식 유튜브 채널 방송 보기 아래에는 댓글쓰기 기능을 막아 놓은 상태다. 욕설과 비방글을 미리 차단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누리꾼들은 SNS나 커뮤니티 등 다른 채널을 통해 “아동 학대 아니냐”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왜 부모 돈벌이에 아이들을 이용하냐”는 등의 비난 여론을 쏟아냈다.

가상 결혼 리얼리티 프로그램 MBC ‘우리 결혼했어요’가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 2008년이다. 당시 결혼과 같은 인륜지대사를 가상으로 한다는 사실에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지만, 당시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예인들은 시쳇말로 인기가 ‘떡상’했다.

이후 16년만인 2024년 방송 사상 최초로 가상 이혼 리얼리티가 론칭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첫 방송에 4.2%(닐슨코리아, 유료방송기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첫 회 이혜정·고민환 부부의 클립 영상은 유튜브에서 무려 300만뷰 이상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MBN ‘한번쯤 이혼할결심’



프로그램 제목처럼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이혼할 결심’을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결혼 커플 3쌍중 1쌍은 이혼을 하니, 우리 사회에서 이혼을 숨기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또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혼 가정이 흔하게 등장하고 시청자들도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그렇다손 치더라도 자녀들에게 부모와의 이별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고 트라우마다. 이혜정·고민환 부부의 40대 아들도 부모의 가상 이혼 소식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쓸 정도였으니, 고작 10살짜리 어린 아들은 오죽할까 말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은 ‘부모의 소유나 미래를 준비하는 존재가 아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존귀하고 존엄한 존재이며, 권리의 주제자’로 천명하고 있다. 아동이 편안한 환경에서 잘 자랄 권리는 그들의 건강한 성장에 있어 중요한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할 권리다. 이는 부모들이 지켜줘야할 의무인 것이다.

MBN ‘이혼할 결심’



물론 방송에서 정대세 부부는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부모만큼 아이의 성향을 잘 아는 이는 없기에 아동학대라는 일부 시청자들의 주장은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연예인 가족들의 일상이 방송으로 전국민에게 노출되고 이들이 파경에 이르는 일들이 늘어나며 이들 자녀에 대한 보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혼할 결심’ 제작진이나 부모가 아이에게 만큼은 이 상황이 ‘가상’으로 연출된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리리고 충분히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해도 어떤 식으로 트라우마가 남을지 모를 일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이 프로그램은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은 커녕 미성년자를 대상으로한 ‘잔혹한 몰카’로 밖에는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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