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고개 드는 `AI 워싱`, 이젠 옥석 가려야

팽동현 2024. 1. 2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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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동현 ICT과학부 기자
팽동현 ICT과학부 기자

브라질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열렸을 때니 약 8년 전 일이다. 올림픽에 맞춰 클라우드와 IoT(사물인터넷)를 중심으로 스포츠에 IT(정보기술) 접목이 확산되는 흐름을 다루는 기사를 기획했다. 태릉선수촌을 찾아가 선수들이 받는 여러 훈련과 결과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곳에선 당시 국내 프로야구 중계에도 막 활용되기 시작했던 타구 추적 장비를 접하는 등 IT기자로서뿐 아니라 스포츠팬으로서도 즐겁게 취재한 기억이 남아 있다.

다만 그때 접했던 여러 관련 업체들이 모두 좋은 인상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 중 한 곳은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 한 인기 스포츠의 선수 능력 측정과 향상을 IoT와 빅데이터 기반 솔루션으로 지원한다고 홍보하던 중소기업이었다. 선수들이 공을 다루는 움직임을 멀리서 센서로 측정한다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그 데이터를 정리해 분석하는 데 쓰는 도구라며 PC에서 켠 게 친숙한 화면의 엑셀 스프레드시트였다.

IT업계에 빅데이터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도 과연 얼마나 크고 다양해야 빅데이터인지 논의가 거듭되긴 했다. 하지만 글로벌 SW(소프트웨어) 기업들이 MLB(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NBA(미국 프로농구),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에 적용한 선진사례들을 알아본 뒤였기 때문일까. 엑셀 작업을 빅데이터 분석이라 당당하게 내세우는 모습을 대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헛걸음을 했고 기사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그 해는 바로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충격적인 승리를 거두며 인공지능(AI) 시대의 여명을 알렸던 때이기도 하다. 이후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의 마케팅·홍보 메시지에는 점차 빅데이터·IoT가 줄어드는 대신 AI가 늘어났다.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하면서 촉발된 생성형 AI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AI 기업을 표방하는 곳도 언젠가부터 범람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현상은 AI뿐 아니라 앞서 다른 IT 트렌드가 떠오를 때도 유사하게 벌어졌던 일이다. 또 AI의 경우 그저 일시적 유행에 그칠 공산은 낮아 보인다. 이젠 바둑판을 넘어 우리가 몸담는 산업과 일자리에서 충격적인 성과를 낼 거라는 전망도 곳곳에서 쏟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기업이 발 빠르게 AI를 도입·적용하거나 연구·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행보라 할 수 있다. AI 기반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 등 생태계 활성화는 AI 산업 성장에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AI 수식어를 여기저기서 무턱대고 붙이는 게 과연 맞는 건지는 의문이 든다. 멀티모달 LLM(대규모 언어모델)을 직접 개발해 공급하는 곳과, 이를 기반으로 한 챗봇을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등으로 가져와서 적용만 하는 곳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또 AI 분야에 생성형 AI만 있는 것도 아니다. 딥러닝을 포함한 머신러닝과 NLP(자연어 처리)·NLU(자연어 이해), 컴퓨터 비전, 로보틱스 등까지 여러 세부 분류가 존재한다.

IT 업계에서 AI 수식어가 유행처럼 쓰이면서 우려되는 점은 소비자·이용자와 투자자 및 정책입안자들에게 불명확하고 불투명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다. AI 기업이라며 생성형 AI를 한다는 곳은 널렸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어물쩍 넘어가거나 과대광고로 여길 만한 메시지도 종종 눈에 띈다. AI라는 말로 포장하기에 앞서 무슨 기술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래서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인지 충분히 알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글로벌 IT리서치·컨설팅사인 가트너는 올해 글로벌 IT 지출 전망을 발표하면서 생성형 AI가 단기적으로 IT 지출 성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진 않을 거란 예측을 재차 내놨다. 가트너는 수년 전부터 기업들의 AI 관련 과대광고에 대해 'AI 워싱'(AI-washing)이라는 표현을 썼고, 최근에도 이 때문에 AI 산업과 시장의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아직 AI 분야는 초기 단계이고 시장도 본격적으로 열리진 않았다. 가트너는 생성형 AI가 기업 IT 예산에서 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내년으로 보고 있다. 올 한해는 AI 모델·서비스들이 기반을 다지고, 이 가운데 옥석이 조금씩 가려지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늬만 AI'인 곳들이 아니라 실력과 특색을 갖춘 AI 기업들이 'AI 워싱'의 훼방에도 살아남아 미래를 거머쥐기를 기대한다. d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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