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병립형 선거제 퇴행으론 검찰정권 심판 못한다
[왜냐면] 유승익 | 한동대 연구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자중지란에 빠진 국민의힘에게 의외의 우군은 민주당이다. 선거제도를 놓고 ‘병립 회귀론’이 다시 야당에서 힘을 얻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총선이 “여유 부리며 의석 나눠 주는 자선사업”이 아니라고 강변하며 병립형(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방식) 회귀를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선거제 변경의 열쇠는 민주당 지도부가 쥐고 있다. 회귀든 유지든 선거제를 통해 도출되는 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현재 거론하는 3대 권역별 병립형 개악은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며, 민주당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근거는 다섯 가지다.
첫째, 민주주의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병립형 회귀는 현행 준연동형(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의석수를 배분한 뒤,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그보다 모자랄 경우 절반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보다 비례성을 떨어트린다. 국민의 표심을 더 왜곡한다. 선거제도의 변경은 국민의 뜻을 더 잘 반영할 수 있을 때 정당화된다. 반대의 경우, 개악이며 반민주적이다. 민주당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헌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반민주적 개악에 손을 뻗치고 있다.
둘째, 정정당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는 과정에서든 결과에서든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고 또 져야 한다. 민주당 지도부는 병립형 회귀를 만지작거리다 당내 의원들과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을 받고 준연동형 유지로 가닥을 잡더니 다시 권역별 병립형이라는 변태적 제도에 눈독 들이고 있다. 왜일까? 제3지대 세력의 등장이 변수다. 몇 되지 않는 의석을 뺏길 것 같아, 게임의 규칙을 변경하려는 것이다. 유치한 행태다.
셋째, 정치적 비겁함과 소심함 때문이다. 준연동형을 유지하면 국민의힘은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것이라 공언하고 있다. 제도에 허점이 있었고, 그동안 양당은 이를 개선할 충분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못했고 이제 선거가 코앞이다. 국민의힘은 다시 위성정당이라는 선택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민주당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위성정당이 무서워, 이를 핑계로 민의를 왜곡하던 과거 제도로 돌아가는 소심하고 비겁한 선택을 하려 한다. 국민은 소심쟁이 정치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넷째, 선거제 야합으로 얻을 의석으로는 현 정권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협력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신당 세력 및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은 굳이 가로막으면서도, 정권 심판의 대상으로 부르짖고 있는 국민의힘 세력과 야합해 의석을 얻을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을 심판할 자격조차 없다. 현 정권을 심판하고 또 견제하기 위해서 국회 의석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권 심판의 힘은 단순히 양적 다수 의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180석을 가졌던 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나홀로 민주당의 무능은 이미 증명됐다. 민주당 일색의 양적 다수로는 검찰정권의 폭주를 멈추지 못한다. 여러 야당, 국민의힘에 반대하는 중도·보수세력, 시민사회와 연합하는 정치만이 정권을 심판할 수 있다.
다섯째, 선거제 퇴행을 감행할 경우, 윤석열 정권 심판 전에 민주당이 선거로 심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은 두 가지 낙관론에 빠져 있다.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도가 총선에서 민주당 선호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하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당 지지도가 총선의 지표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현재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박빙 열세다(한겨레 1월21일치 ‘민주당, 총선 박빙 열세…책임 두려워 위기 아닌 척’). 다른 하나는 선거제를 바꾸면 “멋지지 않지만 쉽게” 의석을 가져올 수 있다는 낙관론이다. 현실정치는 여유 부리며 의석을 나눠주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그렇기에 검찰정권의 파트너인 국민의힘과 적대적 공생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퇴행하는 민주당에 나눠줄 여유 의석은 없다.
민주당은 정치공학의 얄팍한 계산으로 공직선거법을 개악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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