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력만으로 전문성 발휘 의문… 간첩수사 안보공백 우려 커 [심층기획-‘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 한 달]
폐쇄적 영역인데다 승진 어려운 분야
경찰 보직 원칙상 5년 이상 근무 불가
국정원은 30∼40년 한 부서에서 종사
10년 넘어가는 장기수사 사례도 흔해
전문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응 필요”
국가안보실 산하 수사본부 신설 제안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 권한인 ‘대공 수사권’이 국가정보원에서 경찰로 완전히 이관된 지 한 달이 흘렀다. 국정원은 올해 1월1일부터 해외정보망 등을 통해 입수한 대공 첩보를 경찰에 전달만 할 뿐 직접 수사는 못 하게 됐다. 수사 권한은 경찰로 넘어왔지만, 국정원의 주 업무이던 간첩 수사를 경찰이 공백 없이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찬에서 “해외 수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살펴봐야 하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와 관련해서도 국민의힘 지도부에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못 하게 하는 건 잘못됐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정부 집권 때인 2020년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정보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모두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단독으로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1961년 6월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설립 직후부터 줄곧 이어진 간첩 조작 사건과 국내 정치 개입 및 인권침해 방지 등을 목적으로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를 삭제하고 대공 수사권은 경찰에 넘기도록 한 것이다. 법안은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1월1일부터 시행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안보수사단 정원 142명 중 현재 86명이 근무 중이며 2월 초로 예정된 상반기 정기인사에 추가로 인원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4년에 구축해 노후화된 안보수사망과 관련해서는 “장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2024년 예산 10억1600만원을 확보해 장비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찰은 전국 안보수사 부서에서 불법 게시물을 차단·삭제하고 안보위해 사이트 분석 등을 위해 별도의 안보수사망을 구축해 놓고 있다.
◆“정부 합동체계 필요”
경찰의 전체 안보수사 인력은 지난해 724명에서 올해 1127명으로 약 56% 증원되면서 순수 대공수사 인력(700여명)이 75%가량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안보수사 정예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전문 기관인 ‘안보수사 연구·교육센터’를 지난해 10월 개소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전·현직 국정원 직원 등이 안보경찰실무 교육을 하고 있다.
최근 경찰청은 안보수사대 수사관 43명 중 절반을 교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사상 최초로 시도청·경찰서 안보팀장 대상으로 지휘역량을 평가해 역량이 미달된 수사관을 퇴출시킨다는 방침에 이은 파격적인 조치로 풀이됐다. 잔류자는 지난해 말 지정됐고, 이후 방출자의 자리를 채울 수사관 선발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처음부터 수사 직렬로 채용해 30∼40년 수사 부서에서만 근무하는 반면 경찰은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한 부서에서 5년 이상 일할 수 없다. 밀도 높은 안보수사 역량을 기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 10년이 넘어가는 장기 수사가 흔한 안보 범죄의 특수성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문제점도 상존한다.
◆해외 수사는 거의 불가능
특히 한국 경찰 신분으로 외국에서 수사하는 것은 상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해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경찰이 해외에서 대공수사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반도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고, 한국 사회를 흔들려는 북한의 도발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수십 년 쌓아온 국정원의 대공수사 노하우를 그대로 사장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가안보실 안보수사본부 신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조성구 경운대 교수(항공보안경호학부)는 전문성 있는 안보수사를 위해 ‘국가안보실 안보수사본부’ 체계를 제안했다. 경찰에게만 안보수사를 맡길 것이 아니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사회 전반에 침투한 반국가세력에 대한 안보수사가 요구되고 있다”며 “국가안보실 안보수사본부를 대통령령으로 설치해 포괄적 안보에 대응할 수 있는 정부 부처의 협력대응 제도를 신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정지혜·곽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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