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력만으로 전문성 발휘 의문… 간첩수사 안보공백 우려 커 [심층기획-‘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 한 달]

정지혜 2024. 1. 2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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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수사 전문성 필요한데… 순환근무로 역량쌓기엔 한계
폐쇄적 영역인데다 승진 어려운 분야
경찰 보직 원칙상 5년 이상 근무 불가
국정원은 30∼40년 한 부서에서 종사
10년 넘어가는 장기수사 사례도 흔해
전문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응 필요”
국가안보실 산하 수사본부 신설 제안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 권한인 ‘대공 수사권’이 국가정보원에서 경찰로 완전히 이관된 지 한 달이 흘렀다. 국정원은 올해 1월1일부터 해외정보망 등을 통해 입수한 대공 첩보를 경찰에 전달만 할 뿐 직접 수사는 못 하게 됐다. 수사 권한은 경찰로 넘어왔지만, 국정원의 주 업무이던 간첩 수사를 경찰이 공백 없이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정원이 장기간 쌓아 올린 인맥과 노하우는 경찰로 곧장 이식할 수 있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대공 수사권 이관을 놓고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많은 이유다. 안보 문제가 당장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든 만큼 불확실성 속에서 한동안 간첩 수사 관련 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로 인해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하게 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보직 인사에서 본청, 서울청 및 각 시도의 안보수사 관련 담당에 최상의 수사 역량을 갖춘 수사관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2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정문에서 한 경찰관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최상수 기자
2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안보분야 전문가들은 대체로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대공수사 등 안보수사를 경찰로 일원화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분위기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정부·여당에서도 국가보안법 수사에 필수적인 해외 정보기관과 네트워크 등의 역량에서 경찰이 국정원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공수사에서 해외, 북한, 국내 정보가 긴밀하게 융합돼야 한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로 국가적 대공수사 역량 약화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찬에서 “해외 수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국내에 있는 경찰이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살펴봐야 하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와 관련해서도 국민의힘 지도부에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못 하게 하는 건 잘못됐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용 국정원장은 이달 취임 후 “대공 수사권 폐지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에 한 치의 공백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직전 인사청문회 당시에는 “국민 상당수가 불안해하고 있어 대공 수사권 복원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가정보원 전경. 국정원 홈페이지 캡처
◆국정원도 경찰도 골머리

문재인정부 집권 때인 2020년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정보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모두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당 단독으로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1961년 6월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설립 직후부터 줄곧 이어진 간첩 조작 사건과 국내 정치 개입 및 인권침해 방지 등을 목적으로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를 삭제하고 대공 수사권은 경찰에 넘기도록 한 것이다. 법안은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1월1일부터 시행됐다.

개정안 시행까지 수년의 시간을 갖고 원활한 대공 수사권 이관을 위한 준비를 해 왔지만 63년 만의 이 같은 변화에 긴장감은 고조됐다. 국정원과 달리 안보수사가 주축이 아닌 경찰에 이를 일원화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해 온 주요 역할을 빼앗긴 국정원도, 안보수사 전문성을 계속 의심받는 경찰도 불편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에서 안보수사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폐쇄적인 영역인 데다 승진이 어렵기로 손꼽히는 분야다. 대공 수사권 이관을 앞두고 경찰은 이런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여러 실험에 나섰다. 먼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설치하고, 핵심 수사를 전담하는 정예팀인 ‘안보수사단’이 신설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안보수사단 정원 142명 중 현재 86명이 근무 중이며 2월 초로 예정된 상반기 정기인사에 추가로 인원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4년에 구축해 노후화된 안보수사망과 관련해서는 “장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2024년 예산 10억1600만원을 확보해 장비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찰은 전국 안보수사 부서에서 불법 게시물을 차단·삭제하고 안보위해 사이트 분석 등을 위해 별도의 안보수사망을 구축해 놓고 있다.

◆“정부 합동체계 필요”

경찰의 전체 안보수사 인력은 지난해 724명에서 올해 1127명으로 약 56% 증원되면서 순수 대공수사 인력(700여명)이 75%가량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안보수사 정예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전문 기관인 ‘안보수사 연구·교육센터’를 지난해 10월 개소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전·현직 국정원 직원 등이 안보경찰실무 교육을 하고 있다.

최근 경찰청은 안보수사대 수사관 43명 중 절반을 교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사상 최초로 시도청·경찰서 안보팀장 대상으로 지휘역량을 평가해 역량이 미달된 수사관을 퇴출시킨다는 방침에 이은 파격적인 조치로 풀이됐다. 잔류자는 지난해 말 지정됐고, 이후 방출자의 자리를 채울 수사관 선발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수사 인력 풀’로 지정된 664명의 예비후보 중 영입할 인재를 찾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안보수사관 자격관리제’를 통해 안보수사 5년 이상 경력자 중 심사를 거쳐 전임 안보수사관 자격을, 7년 이상 경력자에겐 시험을 통해 책임 안보수사관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과 별개로 경찰의 주된 업무가 국내 치안·범죄 수사 위주라는 사실은 대공수사 역량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요인이다. 오랜 시간 투자가 필요한 해외 수사, 해외정보망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적시에 전달하는 일, 그간 쌓은 북한 관련 정보를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것 모두 단시간에 습득하긴 힘든 내용이다.

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정원은 처음부터 수사 직렬로 채용해 30∼40년 수사 부서에서만 근무하는 반면 경찰은 순환보직 원칙에 따라 한 부서에서 5년 이상 일할 수 없다. 밀도 높은 안보수사 역량을 기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 10년이 넘어가는 장기 수사가 흔한 안보 범죄의 특수성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문제점도 상존한다.

◆해외 수사는 거의 불가능

특히 한국 경찰 신분으로 외국에서 수사하는 것은 상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해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경찰이 해외에서 대공수사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반도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고, 한국 사회를 흔들려는 북한의 도발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수십 년 쌓아온 국정원의 대공수사 노하우를 그대로 사장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가안보실 안보수사본부 신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조성구 경운대 교수(항공보안경호학부)는 전문성 있는 안보수사를 위해 ‘국가안보실 안보수사본부’ 체계를 제안했다. 경찰에게만 안보수사를 맡길 것이 아니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사회 전반에 침투한 반국가세력에 대한 안보수사가 요구되고 있다”며 “국가안보실 안보수사본부를 대통령령으로 설치해 포괄적 안보에 대응할 수 있는 정부 부처의 협력대응 제도를 신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정지혜·곽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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