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림노래·탁상행정식 ‘유보통합’은 “아이가 불행한” 어른 중심 교육개혁

한겨레 2024. 1. 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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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교육부 주요 정책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박다솜 | 서울교사노동조합 유아부위원장

지난 24일 교육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교육개혁으로 저출산 등 사회적 난제를 푼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아이 중심 교육개혁’이라며 유보통합부터 늘봄학교까지 소통 없이 불도저식으로 추진해왔고, 현장은 이를 끊임없이 비판하며 개선책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여전히 귀를 막고 일방통행 중이다. 교육혁신에 앞장서야 할 교육당국이 오히려 ‘교육개악’에 앞장선 것이다.

유보통합에 대해 교육당국은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같은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업무보고 역시 동어반복에, 재정과 구체적 학교 모델 등 가장 중요한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유보통합 시범학교(유아학교) 운영은 사실이 아니”라는 지난 19일 해명 보도를 뒤엎고, 오는 3월부터 유보통합을 위해 시범학교 30개와 시범지역 3곳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메타버스 활용 유보통합 가상체험’이라는 기상천외한 것이 더해졌다. 어떤 형태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경악스럽다. 한 가지 더. 교육부는 19일 해명을 놓고 “시범운영 기관의 명칭이 ‘유아학교’가 아닐 뿐”이라고 둘러댈 수 있게 교묘히 포장해뒀다. 이는 교육현장의 교사들을 기만하고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한 해, ‘유보통합 선도교육청 사업’은 그저 “선도교육청 사업을 했다”는 허울 좋은 기사를 뿌리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처럼 포장됐다. 그러나 실제로 운영된 사업은 보여주기식, 쥐어짜기식 사업에 불과했다. 지난해 15개 교육청에서 운영한 유보통합 선도교육청 사업을 들여다보면 △기존에 운영하던 사업 △유보통합 정책과 별개로 운영 가능한 사업 △선심성 사업 등이 전부다. 이것이 과연 유보통합을 선도하는 사업인가? 필자는 유보통합추진위원회의 추진위원으로서, 이 문제와 더불어 정책의 청사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해왔지만 교육부는 1년째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통합모델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통합모델 발표 1개월 만인 3월부터 시범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지금처럼 현장 의견 수렴 없이 날림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교육 당국의 땜질식 탁상행정과 돌림노래로 피해를 받는 것은 결국 학생·교사·학부모 등 교육 3주체다.

게다가 이번 업무보고에서 교육부는 사교육 없는 지역과 학교를 조성하겠다며 오히려 사교육 혁파에 반하는 ‘반(反) 유아 중심’ 계획을 만들어냈다. 바로 ‘원어민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놀이 중심 영어’ 정책으로, 원어민과 디지털 기기를 들여 유아 영어 학습을 도입하는 것이다. 초등도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운다. 더 이른 시기의 영어 학습은 흥미 본위와 발달 상황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지금 유아교육 현장은 ‘놀이 중심’이라는 말만 붙이면 모든 게 유아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처럼 ‘놀이 중심’을 마법의 단어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성 없이 오용되는, 실체 없는 놀이 중심은 놀이 중심 코딩, 놀이 중심 한자, 놀이 중심 유튜브, 놀이 중심 기본생활습관, 놀이 중심 메타버스 등 허황된 것도 가능한 척 포장하며 유아교육 현장을 망가뜨리고 말 것이다.

교육당국은 이 정책으로 사교육을 혁파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학부모가 원하는 영어 학습 수요에 맞추기 위한 ‘반 유아 중심’ 정책을 공교육 현장에 들이는 것이 사교육 혁파인가? 정부는 이 정책으로 영어학원 유치부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공교육 현장에도 각종 영어학습 업체와 이번 정부에서 찬양하는 ‘에듀테크’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디지털 업체에 부를 안겨주는 이권 카르텔을 만들고 말 것이다.

지금 유아교육 현장에 필요한 것은 진정한 ‘유아 중심’을 찾는 것이다. 어른들의 이권만을 생각하는 유보통합, 아무 계획 없는 유보통합, 학습 수요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정책 개발은 유아 중심이 아닌 어른 중심이며 결국 ‘아이가 불행한 교육현장’이 될 것이다.

교육부는 이제 진짜 ‘늘공(늘 공무원)’과 고위 관료의 수직성을 버리고, 현장과 소통해야 한다. 교육현장을 이 정도로 경직되게 만든 자는 누구인가? 그동안 수많은 소통을 요구했지만 더는 제안도, 어떤 행동도 먹히지 않기에 “감히 교사로서” 마지막 요청을 하고자 한다.

돌림노래와 탁상행정 일삼는 진짜 ‘늘공’ 교육부는 각성하고 주요 실무진을 교체하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교육현장의 혼란과 소통 부재에 책임지고 당장 사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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