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임명동의제 무시하고 국장 인사 강행…기자들 "반칙으로 첫 발"
KBS 기자협회 통합뉴스룸 협회원들 "무슨 수로 좋은 뉴스 만들 생각인가" 경영진 비판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KBS 기자협회 구성원들이 임명동의제 없는 국장 인사를 비판하며 연이은 성명을 내고 있다.
앞서 KBS 사측은 26일 보도 기능이 있는 부서 국장을 임명할 때 해당 부서의 노동조합 조합원 과반이 참여한 투표에서 과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국장 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관련 인사를 냈다. KBS는 편성규약, 단체협약 등을 근거로 통합뉴스룸(보도국), 시사교양1·2국, 시사제작국, 라디오제작국 국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시행해왔다.
이에 KBS 기자협회의 통합뉴스룸 협회원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반칙으로 첫 발을 떼는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불신하는 구성원들을 어떻게 이끌고 갈 생각인가. 무슨 수로 좋은 뉴스를 만들 생각인가”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귀를 열고 질문을 받으라. 입을 열고 당당하게 답하라.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통합뉴스룸 국장이 누구인가. 기자뿐만 아니라 여러 직종이 섞인 약 400명의 구성원을 이끄는 리더”라며 “통합뉴스룸 리더는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취재 현장의 여러 고충을 듣지 않고, 제작 일선의 다양한 불만에 귀 닫고, 제대로 이끌 방법은 없다”고 했다. 또한 “공영방송 뉴스의 지휘자는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뉴스가 가야 할 길을 선명히 제시해야 한다. 뉴스에 개입하려는 외부 세력엔 단호한 언사도 행사해야 한다”며 “정확히 듣고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능력, 통합뉴스룸 국장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시사, 토론, 중계 프로그램 등을 만드는 시사제작국 기자협회원들도 “국장 지명자가 국 운영에 대해 어떤 기준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듣고, 임명 동의 여부를 표현함으로써 그에 답하는 건 시사제작국 기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절차”라고 강조하면서 “인사권자는 취재제작 자율성 수호를 위해 기자들이 어렵게 쟁취한 임명동의제를 실시하고, 지명자도 국 운영에 대한 비전을 밝혀 구성원을 설득하고 동의 절차에 응하길 바란다”고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시사제작국 기자들은) 프로그램 제작비가 줄고, 이에 따라 제작 리소스가 축소되고, 편성 시간이 멋대로 옮겨지거나 더 나아가 프로그램 통폐합 논의가 나오는 걸 우려한다. 프로그램 구상·제작 과정에서, 소통과 설득이 생략된 일방적 결정이 내려지는 것도 경계한다. 이런 문제는 대개 제작 자율성 침해로 이어져, 중장편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사제작국에선 더 큰 파국을 낳기 때문”이라며 “시사제작국장은 그런 기자들의 우려와 경계를 해소하고, 프로그램을 지켜줄 우산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8일에는 타 부서의 기자협회원들도 “회사는 지금이라도 절차상 잘못을 인정하고 임명동의제를 실시하라. 두 국장 발령자는 기자들의 요구에 성실히 응답하시고 당당하게 평가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KBS에는 보도본부가 아닌 타 본부 소속의 기자들도 있다. 이 기자들도 언제든 통합뉴스룸과 시사제작국에서 다시 업무를 하게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임명동의제'는 통합뉴스룸과 시사제작국 소속 기자들만의 이슈가 아니다”라며 “현재의 '임명동의제'는 우리 기자들의 총의를 모아 어렵게 만들어낸 제도이자 공정방송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앞으로 더욱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제도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시한 인사권자의 행태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KBS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번 국장 임명 강행을 “공정방송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법률 대응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29일 기자, PD 직군 조합원 등 50여명과 서울 KBS 본사에서 박 사장 규탄 시위를 진행한 강성원 KBS본부장은 “임명동의제는 KBS 뿐 아니라 교육방송 EBS도 채택하고 있으며 보수 언론사조차 시행하고 있는 언론 공정성에 기초가 되는 제도”라며 “임명동의제 형해와 시도는 언론 자유의 문제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문제”라고 했다.
박민 사장 취임 후 국장 임명동의제 폐지를 추진해온 KBS는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임명동의제는 사장 인사권을 침해하며 인사규정, 정관, 방송법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KBS본부가 사측의 단체협약 이행을 촉구하면서 청구했던 단체협약위반금지 가처분 신청을 22일 법원이 각하했다는 것도 근거로 제시했다. KBS본부는 관련 결정문에 임명동의제가 인사권 침해라는 내용이 없다며 '법원 판단을 호도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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