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美서 활약 한국계 법조인 3인 | “월가 저승사자부터 미국 첫 선출직 검사장까지”

이현승 조선비즈 기자 2024. 1. 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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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 법조계에 선물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워싱턴주 최대 카운티의 검사장 선거에서 역사상 처음 당선된 여성 소수인종 검사장이 한국계라는 것. 지역주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미국의 선출직 검사장은 소수인종, 특히 아시아인에겐 문이 좁기로 유명하다. 미국 검찰에 한국계가 많아질수록 한미 양국 간 수사 공조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한국계는 현재 단 두 명뿐이지만 향후 더 많은 이가 요직에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2024년 새해를 맞아 해외에서 어려움을 딛고 활약 중인 한인 법조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리사 매니언 워싱턴주 킹카운티 검사장시애틀대 로스쿨 사진 리사 매니언

1│美 워싱턴주 첫 한국계 女 검사장 리사 매니언

2022년 11월 8일(현지시각), 미국 시애틀과 커클랜드 등을 포괄하는 워싱턴주 최대 카운티인 230만 인구의 ‘킹카운티’에서 사상 첫 유색인종 여성 검사장이 탄생했다. 리사 매니언(Leesa manion) 검사장은 1978년 이후 44년 만에 열린 검사장 선거에서 무려 58%의 득표율로, 경쟁자를 10%포인트 이상 따돌렸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외부인이 아니라 전임 검사장의 참모로 15년을 지역사회를 위해 묵묵히 일한 인물이란 사실도 주민들로 하여금 그녀의 승리에 박수를 보내게 했다.

매니언 검사장은 1960년대 서울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백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뚜렷하게 갖지 못한 채 자랐다. 할머니가 백인이 아니고 영어도 서툰 그녀의 어머니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집에서 내쫓아 25년 동안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매니언 검사장은 백인이 대부분인 켄터키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한국어는 물론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본인을 ‘대한민국 아줌마’라고 소개한다. 매니언 검사장은 취임 후 최근 한국 언론과 첫 공식 인터뷰를 하고 2022년 검사장 선거에서 단지 같은 뿌리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열렬하게 지지해 준 한인 사회의 정에 크게 감동했다고 했다. 그는 “당선된 후 사무실로 들어가던 중 우연히 만난 한국인 사업가가 두 주먹을 서로 맞대면서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매니언 검사장은 직원 600명, 연간 예산 8000만달러(약 1053억원)에 달하는 킹카운티 검찰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숨 가쁜 1년을 보냈다. 취임 후 성 기반 폭력 및 예방 부서(GBVP·Gender Based Violence and Prevention Divison)와 경제 범죄 및 임금 착취 부서(ECWT·Economic Crimes and Wage Theft Division)를 만들었다. 인종, 성차별에서 비롯된 증오 범죄(hate crime)를 해결하고 조직적인 소매업 도둑질(Organized retail theft)과 임금 착취를 뿌리 뽑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존 최 미네소타주 램지카운티 검사장미첼 햄라인대 로스쿨 사진 존 최

2│한인 첫 美 카운티 검사장 선출된 존 최

“미등(尾燈)이 고장 났다고, 백미러에 뭔가 달아놨다고 경찰이 지나가는 차를 멈춰 세우는 일을 줄이겠다.” 2021년 9월, 미국 미네소타주 인구 55만 도시 램지카운티의 한국계 검사장이 밝힌 새로운 정책을 로이터, AP통신 등 주요 매체가 비중 있게 보도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선 경찰이 자동차 정비 상태가 불량하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정차(停車)시킨 뒤 수색해 경범죄를 적발하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미국에 거주하는 유색인종은 이런 일이 백인보다 자신들에게 더 자주 일어난다고 느꼈다. 램지카운티에 속한 세인트폴은 2020년 전 세계적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발생지 미니애폴리스와 미시시피강을 두고 마주하고 있다. 40대 남성 조지 플로이드는 위조지폐를 사용한 혐의로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경찰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했다.

2011년부터 램지카운티 검찰청을 이끄는 존 최(한국명 최정훈) 검사장은 미국 사법 정책이 인종이나 소득 계층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해 왔다. 세인트폴에서도 2021년 경찰이 흑인이 탄 차를 멈춰 세우는 경우가 백인일 때보다 네 배 많았다. 이에 최 검사장은 공공 안전과 관계없는 정차를 최소화하고, 정차시키더라도 거기서 발견된 경범죄는 불기소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약 2년이 흐른 2023년 7월 램지카운티가 발표한 정책 성과에 따르면, 공공 안전과 관계없는 이유로 정차시키는 행위(non-public-safety traffic stops)는 2022년 전년 대비 86% 줄었다. 장비 불량 등의 이유로 정차당한 건수가 모든 인종에서 감소한 가운데 흑인 66.5%, 아시아인 61.1%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이 기간 유의미한 범죄 건수 증가는 나타나지 않았고 교통 체증은 완화됐다.

최 검사장은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한인 2세다. 이민 초기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 주택에서 지낼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열심히 일해 자식을 뒷바라지한 부모 덕분에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고, 지금은 미국에 단 두 명뿐인 한국계 선출직 검사장이 됐다. 주민 66%가 백인인 램지카운티에서 유색인종과 저소득층, 여성과 아동에게 불리한 사법 정책을 개혁하는 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다.

준 김 클리어리 고틀립 스틴앤드해밀턴 로펌 파트너 변호사 하버드대 로스쿨, 전 뉴욕연방 남부지검 지검장 대행 사진 준 김

3│뉴욕 테러 해결한 한인 ‘스타 검사’ 준 김

2017년 10월 미국 핼러윈데이에 뉴욕 맨해튼 자전거 전용도로로 트럭 한 대가 돌진해 여덟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불과

1㎞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참사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사건 바로 다음 날, 뉴욕연방남부지검은 이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면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세력 이슬람국가(IS) 영향을 받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세이풀로 사이포브를 기소했다.

뉴욕연방남부지검장 대행이란 타이틀을 달고 기자회견에 나선 준 김(한국명 김준현)에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향했다. 김 전 대행은 그해 3월 맨해튼을 관할하는 뉴욕연방남부지검 일인자가 됐다. 상관인 프리트 바바라 검사장이 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의해 해고되면서였다. 뉴욕연방남부지검은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릴 뿐 아니라 테러부터 정치인 부패, 마피아 조직 범죄 등 굵직한 사건을 담당한다. 미국 검사 사이에서도 선망의 대상인 자리에 한국계로서는 미국 최고위직에 오른 사례로 주목받았다.

약 10개월의 지검장 대행 기간 그는 맨해튼 트럭 테러를 비롯해 △미국 대학 농구 뇌물 스캔들 △튀르키예 국유 은행의 이란 제재 위반 △러시아 범죄 조직의 마약 유통, 불법 총기 거래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의 핵심 참모 부패 사건 등을 담당했다. 임기를 마칠 무렵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담당한 주요 사건을 조명하며 “이전까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그가 짧았지만 바쁜 10개월을 보냈다”는 장문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김 전 대행은 현재 클리어리 고틀립 스틴 앤드 해밀턴 로펌에서 특허 침해 등 화이트칼라 범죄와 소송 전문 변호사로 기업이나 개인을 대리하고 있다. 공개 가능한 한국 사건으로는 2020년 메디톡스를 대리해 미국 워싱턴 D.C.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대웅제약을 상대로 수입 금지를 이끌어낸 일이 있다. 직전 해에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자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보툴리눔 톡신 제제(보톡스) 나보타를 10년간 수입 금지해야 한다고 ITC에 제소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메디톡스 소송과 관련해 “‘메디톡스의 귀중한 영업비밀을 도둑맞았다’는 매우 성공적인 판결을 얻어냈다”라며 “미국 사법 시스템 내에서 고객의 권리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고 보람찬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살아본 적이 있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다른 미국 변호사가 할 수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대행은 미국 연방 검찰에서 일하면서 한국과 관련한 많은 사건을 지휘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 검사들과 긴밀하게 협력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김 전 대행 같은 한국계 검사가 늘어날수록 양국 간 사법 공조도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고 법조계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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