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전통주 심사위원 섭외 ‘0순위’ 한국식품연구원 김재호 책임연구원] “MZ 세대의 양조장 창업, 성급한 면 있어 신중해야”
전통주 업계로서는 의미가 큰 행사가 2023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렸다. 막걸리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 출범식이 그것이다. 막걸리 빚기의 역사, 양조법, 재료 및 문화적 의미를 국제 공동의 가치로 확산시키고자 한국막걸리협회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여 막걸리를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한국식품연구원(한식연) 김재호 책임연구원도 이날 참석했다. 한식연은 전북 완주군에 있다. 이날 한식연에서 행사장인 강남으로 오려면, 승용차로 이동해도 거의 3시간이 걸린다. 그는 행사 시작인 오후 3시에 맞추어 참석했다. 이날뿐 아니다. 전통주와 관련해 술 품평회, 정책 세미나 등 전국 주요 행사에 김재호 책임연구원이 빠지는 법은 거의 없다. 정부가 주관하는 우리술품평회를 비롯해 대한민국주류대상 등에 심사위원, 혹은 심사위원장으로 참가한다. 한마디로 김재호 책임연구원은 ‘전통주 행사 섭외 0순위’다. 한약방 처방에서 빠지지 않는 감초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김재호 책임연구원은 한식연에서 기획본부장, 우리술센터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을 뿐 아니라, 2007년 한식연 입사 전에 느린마을막걸리로 유명한 배상면주가에서 품질보증팀장으로도 근무했다. 이 밖에도 식약처 주류 안전관리 컨설팅, 농식품부 전통주 품질관리 사업 컨설팅 등 다수의 정부 기관 컨설팅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지금도 전국 8도의 양조장들을 오가며 컨설팅하고 있다. 그래서 양조장 대표들에게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친형님 같은 존재’로 통한다. 배재대에서 전통주 관련,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통주와 관련해 둘째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전문가인 김재호 책임연구원을 한식연 본사에서 만나, 우리 술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했고, 거침없는 답변이 곧바로 돌아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통술과 관련해, 한식연의 주요 활동 업무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첫째는 양조 미생물을 발굴하고 이를 산업화하는 일이다. 양조 미생물의 관리와 개발 보급 사업이다. 술 발효와 관계있는 효모와 곰팡이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전국의 오일장을 돌아다니면서 자가 누룩을 내다 파는 이들에게서 누룩을 직접 샀다. 누룩에서 양조용 효모와 곰팡이를 분리해 내는 일부터 시작했고, 이제 양조용 효모를 1만2000종 정도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양조용 효모를 개발해 전국의 양조장에 보급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전통 발효제 활성화 지원 사업이 그것이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는 아니지만, 한식연의 두 번째 사업은 증류주 숙성 기술 사업이다.
가령, 같은 증류주를 스테인리스, 옹기, 오크통 등 세 개의 숙성 용기에 따로 담아 그 변화를 오랫동안 분석하는 작업이다. 시작한 지는 10년쯤 됐지만, 아직 성과를 마무리할 단계는 아닌 걸로 안다. 첫 번째 개량 누룩 보급 사업과는 달리, 증류주 숙성 기술은 아직 일선 양조장에 기술이전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밖에도 양조 관련 교육 사업도 하고 있고, 술 품질 인증 사업 등 정부 정책 후속 조치도 진행하고 있다.”
개인 메일 주소가 ricewine이다.
“2007년 한식연에 입사하고 나서 내 업무(전통주 담당)를 외부인들이 쉽게 파악하시라고 그렇게 메일 주소를 정했다. 당시는 우리 쌀로 술을 만드는 전통주를 대외적으로 어떻게 표기할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흔히들 외국인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라이스 와인(쌀로 만든 와인)이라고 했지만 사실,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발효 특성을 보더라도, 와인과도 다르고, 또 맥주와도 다른 게 막걸리다. 이제는 전통주 산업 위상이 과거와 달리 높아진 탓에, 공식 영어 논문에 ‘Takju(탁주)’ ‘Yakju(약주)’ 등의 명칭을 쓰고 있다. 심지어 누룩도 소리 나는 대로 ‘Nuruk’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전에는 누룩 표기를 코지(일본의 발효제) 정도로 했을 뿐이다. 내가 한식연 입사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전통주 위상이 높아진 셈이다.”
오랫동안 주류 심사를 해온 소회는.
“초창기에는 대기업들이 첨가물을 넣어 만든 주류들을 주로 심사했다. 그러다가 지역특산주들이 활성화되면서 감미료를 넣지 않은 무첨가물 프리미엄 막걸리들이 심사 대상에 많이 올랐다. 그런데 무첨가 술들은 개성이 없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출품 술들 대부분이 감미료 무첨가에, 알코올 도수가 높고 단맛이 강하다 보니 천편일률적인 맛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는 자가 누룩을 쓰는 풍정사계 같은 술들이 각광을 받았다. 결국, 쌀, 누룩, 물만으로 만드는 전통주는 직접 만든 누룩으로 개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봉착한 것이다. 이런 변화를 10여 년 주류 심사를 통해 느꼈다.”
요즘 오크통 숙성 쌀 소주가 인기인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나.
“오크통 숙성 소주는 하나의 마케팅 포인트, 트렌드일 뿐이지, 대세는 아니라고 본다. 오크 숙성 술은 오크의 향미가 그대로 우러나와서, 그 향미를 즐기는 것이지, 술 원주의 특성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쌀 소주 자체에서 풍기는 곡물의 향을 잘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세계 증류주 시장에도 잘 먹히지 않나 여긴다. 오크 숙성을 우리가 위스키보다 더 잘할 수 있겠는가 하는 현실적 의문이 있는 것이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양조장 창업이 많은데.
“소규모 양조장 창업 문턱이 낮아진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전통주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난 탓이라고 본다. 나루생막걸리를 히트 친 한강주조의 성공에 고무된 예비 창업자들이 많은 걸로 안다. 하지만 우려할 사안도 많다. 2년 정도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양조 교육을 받고, 양조장 견학 몇 군데 다녀와서 양조장을 차린다? 이렇게 성급한 양조장 창업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양조장 창업을 준비 중인 사람들이 내게 많이 찾아온다. 내 첫째 질문은 항상 똑같다. ‘양조장 창업이 생계형인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면 ‘절대 하지 마라’고 권한다. 대신에 ‘내 술 철학이 들어간 술을 만들고 싶다, 내 이름이 들어간 술을 하나 남기고 싶다’는 대답이면 ‘한번 해보시라’고 말한다. 돈 벌려고 양조장 창업하지 말라는 얘기다.
양조장 사업은 시간의 숙성이 필요한 사업이다. 특히 증류주의 경우, 3년 이상 돈 한 푼 못 벌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MZ 세대 경우, 기존 양조장에 들어가 현장 경험을 쌓은 후에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 창업해도 늦지 않다.”
우리 술의 세계화는 어떤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우리 술의 세계화가 곧 수출 확대라고 볼 수는 없다. 세계화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자. 가령, 피자를 보자. 이탈리아 음식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우리가 피자를 수입해 오지는 않는다. 관련 식자재 수입도 미미하다.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피자 문화를 수출한 것이지, 피자 자체를 판 것은 아니다. 약간 다른 문제이지만, 탁주, 약주 통틀어 우리 술 세계화의 약점은 짧은 유통기한이다.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살균을 하지만, 이는 생주의 신선함을 포기한 처사다. 이런 측면에선, 피자처럼 해외 현지 생산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 생산, 수출’ 단순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주세법상에는 다양한 과실주를 한국 와인으로 표기할 수 있는데, 과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과 와인, 감 와인 등의 표기는 사실 문제가 있다. 그냥 사과 과실주, 감 과실주가 맞지 않나. 서양 술인 포도 와인을 죄다 염두에 두고, 당도를 높이려고 갖은 수를 쓰는 게 한국 와인 양조장들의 현주소다. 과일은 단맛만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신맛은 단맛만큼이나 술 전체의 맛을 좌우한다. 그런데 개별적 과일 특성을 무시하고 단맛만 높이려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 과실주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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