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의 진짜 이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월 11일(이하 현지시각)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의 거래소 상장을 승인했다. ETF는 상장지수상품(ETP·Exchange Traded Product)에 속하는 상품 중 하나다. SEC가 과거 6년 동안 승인을 거절하다가 이번에 승인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정확히 알아야 한국의 정책적 대응도 제대로 도출될 수 있다.
먼저 게리 겐슬러(Gary Gensler) SEC 위원장의 승인 발표문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발표문은 SEC가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그리고 법원이 법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행동한다고 자주 언급한다. 즉 이번 결정은 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2018년부터 2023년 3월까지 제이 클레이튼(Jay Clayton) 위원장 재임 기간에 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20건 이상의 거래소 규정 신고를 승인하지 않았다. 미국의 증권거래소는 1975년 증권법 개정안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상장하기 전에 위원회에 상장 규정 변경을 신청해야 한다. 위원회는 ‘제안된 규정 변경이 거래소법 및 SEC 규정의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새로운 규칙을 ‘승인’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국의 증권거래소는 국내처럼 한국거래소(KRX) 하나가 아니라 10여 개가 운영 중이라는 것이다.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이 제출한 신청서 중 하나는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을 ETF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그레이스케일 신탁은 현재 발행된 비트코인의 3.4%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2024년 1월 기준 약 280억달러(한화 374조원)에 달한다. 그레이스케일 신탁은 거래소에서 거래될 수 없기 때문에 장외시장에서만 거래가 된다. 장외시장의 참여자들이 제한되기 때문에 그레이스케일 신탁은 기초자산 대비 30%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신탁 투자자들에게 40억달러(약 5조26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주장했다.
SEC의 승인 거부 설명 불충분이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으로 이어져
미국 컬럼비아 특별구 항소법원은 SEC가 그레이스케일이 제안한 ETF의 상장 및 거래를 승인하지 않은 이유(이하 그레이스케일 명령)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법원은 그레이스케일 명령을 무효화하고 해당 사안을 2023년 8월 29일 SEC에 환송했다.
법원 판결문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SEC가 이미 거래되고 있는 비트코인 선물 ETF와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다른 처우를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레이스케일의 신청을 승인하지 않은 것은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arbitrary and capricious) 결정이라는 것이다. 원유, 금 같은 상품(commodity)과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에도 현물시장과 선물 시장이 있다. 현물시장은 상품이나 금융 상품을 직접 거래하는 현금 시장을 말한다. 비트코인 현물시장에서는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교환하고 즉시 비트코인의 인도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파생 상품 시장에서 금융 상품의 가격은 기초자산이 되는 현물시장에서 파생되지만, 현물시장에서 거래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파생 상품 중 하나가 선물이며, 선물은 특정 날짜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자산을 사고파는 계약이다. 투자자가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선물 계약은 글로벌 파생 상품시장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Chicago Mercantile Exchange)와 같은 상품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다. 시카고상품거래소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규제를 받는다.
예를 들어, 2018년 SEC는 배츠 BZX 거래소(Bats BZX Exchange)의 윙클보스 비트코인 신탁(Winklevoss Bitcoin Trust) 상장 신청을 거부한 바 있다. SEC는 해당 상품이 거래소법에서 요구하는 ‘사기 및 조작 행위와 관행을 방지하기 위한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SEC는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시장의 규모 및 유동성 등이 사기를 방지하기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시장이 작을수록 소수의 참여자가 가격을 조작하는 것이 쉽다. 그레이스케일 역시 2021년 10월 19일 뉴욕증권거래소 아르카(NYSE Arca)의 ETF 상장을 신청했으나 SEC는 2022년 6월 29일 이를 거부했다.
반면 SEC는 2022년 4월 뉴욕증권거래소 아르카의 테우크룸 비트코인 선물 펀드(Teucrium Bitcoin Futures Fund) 상장 제안을 승인했다. 한 달 후, 나스닥(Nasdaq)의 발키리 XBTO 비트코인 선물 펀드(Valkyrie XBTO Bitcoin Futures Fund) 상장 제안이 승인되었다. SEC는 두 상품에 대해 뉴욕증권거래소 아르카와, 나스닥은 시카고상품거래소와 불공정거래행위 모니터링을 공유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를 통해 사기 및 조작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자체 테스트를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그레이스케일은 컬럼비아 특별구 미국 항소법원에 SEC의 그레이스케일에 대한 명령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다. 미국 행정절차법은 검토 법원이 ‘자의적, 변덕스러운, 재량권 남용 또는 기타 법률에 부합하지 않는’ 기관의 조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청구를 평가할 때 당사는 기관의 결정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었는지 여부를 고려한다. 당사의 정책 판단을 해당 기관의 판단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대신, 법원은 해당 기관이 ‘관련 문제를 고려’하고 적절하게 ‘결정에 대해 설명’했는지 확인한다. 그레이스케일이 관련 규제 요소 전반에서 비트코인 선물 ETF와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위원회가 두 비트코인 선물 ETF는 승인하고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ETF는 거부한 것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제공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레이스케일의 주장은 간단하다. 비트코인 현물가격과 선물 가격이 99.9%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데 왜 비트코인 현물 ETF와 비트코인 선물 ETF를 다르게 취급하는지에 관한 SEC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고, 법원은 그레이스케일의 주장에 동의했다. 이것이 2024년 1월 11일 SEC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소 상장을 승인한 이유다. 즉 법원의 그레이스케일 명령에 대한 무효화라는 판단은 비트코인과 관련한 정책 판단이 아니라 설명이 충분했는가에 대한 절차적 판단이다. SEC의 발표문도 비트코인 투자 위험에 대한 경고로 마무리한다. 국내 뉴스에서 보도된 것처럼 비트코인이 드디어 전통 금융시장의 제도권 편입이라는 정책적 의도로 상장이 허가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 서두를 필요 없어
그럼 일부 주장처럼 우리나라도 비트코인 현물 ETF를 빨리 도입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이 안정되면 도입하면 된다. 그러나 미국의 SEC도 마지못해 도입을 한 마당에, 국내에서 서둘러 도입할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투자자들의 쏠림 현상과 위험관리 능력 부족이다. 한국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 분산투자를 통해 통제된 위험하에서 적정 수준의 수익률을 얻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가능한한 레버리지를 최대로 일으켜, 위험자산에 올인하는 투자를 선호한다. 부동산 역전세 문제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상자산 투자에 비하면 부동산 투자는 매우 안정적이다. 가격이 떨어져도 실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가격은 떨어지면 끝이다. 투자자에게 남는 것이 없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주식과 채권처럼 가격 결정 모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가격이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지 모른다. 글로벌 주식·채권시장만 놓고 비교해도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0.4% 비중을 차지하는 비주류 시장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가상자산에 대한 열기로 이슈가 되기는 했으나, 그만큼 도입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금융기관, 기관투자자,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언제 허용할 것인가, 가상자산을 자본시장법상 ETF의 기초자산으로 수용할 것인가 하는 여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이슈가 터질 때 반짝하고 관심을 갖다가, 이슈가 지나가면 논의가 전혀 되지 않는 우리의 정책 문화에서는 중장기적인 발전 방안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