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의 컬래버노믹스 <25>] 클래식 음악에 컬래버의 답이 있다
클래식 음악은 시대를 넘어 영원한 생명을 지녔다. 아무리 인공지능(AI)이 나와도 사람들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바그너의 명곡을 여전히 사랑한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즐긴다. 작곡가를 빛나게 하는 것은 명연주자와 뛰어난 성악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라얀, 주빈 메타 같은 명지휘자가 있었기에 애호가가 늘어났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마리아 칼라스, 조수미 같은 위대한 성악가가 있었기에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영원한 생명을 이어온 것은 또 다른 공헌자가 있기 때문이다. 천사 역할을 해준 후원자들이다.
올해도 신년 음악회에 다녀왔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제5회 대원문화재단 음악회다. 마에스트라 성시연이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연주했다.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열광적으로 연주하는 손열음은 이미 그가 세계적 연주가임을 다시 입증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더욱 향상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2004년에 설립된 대원문화재단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을 후원하는 기둥이다. 그동안 김선욱, 조성진, 손열음, 양인모, 클라라 주미 강, 임윤찬 등 음악 영재를 발굴하고 후원해 왔으며 매년 대원음악상을 제정해 클래식 음악 발전에 공헌한 인물에게 시상하고 있다.
대원문화재단 김일곤 이사장은 사업으로 번 돈을 이 재단에 쏟아붓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음악인 출신이 아니고 원래 음악 애호가였다. 오래전부터 ‘서울대 국문과 음악 전공’이라는 소리를 들어온 분이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후원 활동을 하다가 재단을 설립해서 뜻을 같이하는 많은 기업인과 체계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 금호그룹에 임원 강의를 간 적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당시 박성용 회장실에서 차담을 하게 됐다. 이날 강의 주제는 ‘제3의 물결과 정보화 사회’였는데 박 회장은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정보기술뿐 아니라 문화‧예술이 발전해야 한다면서 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말씀을 했다. 말씀을 듣다 보니 박 회장이 재벌 기업 회장인지 음대 학장인지 대학 총장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후 유심히 살펴봤더니 엄청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면서 후원인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이 발전하고 세계적 음악가들이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박 회장의 예술적 안목과 통 큰 후원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 영재들을 발굴해 선진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학비를 지원했고 세계 최고 명기 소리를 듣는 고가의 바이올린을 구입해 연주자들이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게 후원했다.
그동안 많은 기업과 기업인이 한국 메세나 운동을 이끌며 아름다운 후원인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기에 르네상스 예술이 피어났듯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예술 후원인 덕분에 오늘날 세계적 음악가들이 나오고 많은 사람이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을 즐기게 됐다.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성악가, 악기 장인, 후원인, 애호가 중에 누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할까.’ 사실은 하나라도 빠지면 클래식 음악 생태계가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이들이 서로 힘을 합쳐 음악 생태계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무대 전면에는 공연자들이 있지만 무대 뒤에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아름다운 후원인이 있다. 나는 음악회에 가면 훌륭한 공연자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늘 이 음악회를 있게 해준 후원자들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내 박수가 유난히 큰 이유는 이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이 끊임없이 대를 이어 온 것은 음악인들과 후원인들의 운명적 협업 덕분이다. 어디 클래식 음악뿐이겠는가. 이 세상 모든 고귀한 문화가 지속하는 것은 바로 협업 덕분이다. 흔히 오케스트라 공연을 지휘자와 연주자의 협업 그리고 다양한 악기들의 협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수많은 사람의 협업이 겹쳐 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마다 컬래버레이션(협업)을 생각한다. 모든 클래식 음악은 컬래버 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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