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아스팔트에 엎드려”…거부권 결정 앞둔 이태원참사 유가족의 호소
'오후 1시 59분'. 누군가에게는 점심 직후의 나른한 시간이겠지만,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에 이 시간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159명. 유가협은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이태원참사 관련 기자회견 등을 오후 1시 59분에 시작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 내일(30일) 재의요구권, 즉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소식이 전해진 오늘(29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 1시 59분, 참사 현장에 선 유가족들…"대통령 집무실 앞까지 '오체투지'"
159명의 희생자가 숨진 이태원역 1번 출구 골목에 오늘 유가족들다시 섰습니다. 정부를 향해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 설립, 즉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를 다시 한번 촉구하기 위해섭니다.
"오늘 우리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 이곳 이태원 참사 현장 앞에 섰습니다.…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여부를 결정하는 국무회의를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정부에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기 위해, 159명의 희생자들이 눕혀져 있던 이 차디찬 아스팔트에 두 무릎과 두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찧으며 '오체투지'로 이곳 이태원 참사현장에서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합니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말 그대로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겁니다. 영하 10도 아래의 혹한의 날씨였던 지난달 18일 국회에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주변을 오체투지로 행진한 이후 두 번째 오체투지입니다.
참사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가족들은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삭발 그리고 두 차례의 15,900배에 나섰습니다. 모두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를 위해섭니다.
■ 대통령실 "특별법 위헌 요소 있다" vs. 유가족 "통과 위해 특조위 구성 많이 양보"
윤 대통령이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이유는 뭘까요?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안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문제를 삼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는데요. 현재 특별법안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면 행정부 산하에 설치되는데도, 국회에서만 위원을 추천하도록 했다는 겁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사실상 제약한다는 겁니다.
또, 국회에서 합의 없이 다수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은 항상 거부권 검토 대상이었다는 점도 들고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신 유가족을 위한 별도의 지원책 발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여당인 국민의힘도 국회에서 합의를 거부하며, 법안에서의 특별조사위원 구성방식을 문제 삼았습니다. 특별조사위원 11명을 여·야가 각각 4명씩 추천하고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해 나머지 3명을 추천하도록 한 게, 야당 측에 치우쳤다는 주장입니다. 현 김진표 국회의장이 민주당 출신인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여야가 4:7의 비율로 특별조사위원을 추천하게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이러한 여당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해왔습니다. 국회를 통과한 현재 안은 이미 여당이 요구한 점을 수차례 반영해 원안보다 많이 양보한 안이라는 주장입니다.
초안에서는 유가족 측이 특조위원 2명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지 못할 상황을 염려해 유가족 몫을 국회의장과 협의하는 몫으로 양보했다는 겁니다.
아울러 특조위가 검찰 수준의 과도한 권한을 가졌다는 여당의 지적에 대해서는 " 특조위는 검찰이 가진 기소권과 수사권이 없으며, 과거 특조위 등 유사한 조사기구들이 가졌던 권한과 비슷한 권한이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중재안에는 담겨있던 특검 임명 요청 조항이 통과안에는 삭제되기도 했는데, 이처럼 현재 안은 여야의 쟁점 사항을 수용해서 반영한 안이라는 게 유가족 측 입장입니다.
■ "마지막 희망 앗아가지 마라…진상규명 없는 피해자 지원책 필요없어"
유가협은 윤 대통령에게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를 위해 그동안 해왔던 이러한 노력들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故 이주영 님 아버지)은 "윤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호소한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남아있는 마지막 희망을 앗아가지 마라"라며 "부디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진상규명 없는 피해자 '지원책'이 아니라 진상조사기구를 설립하고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이라고 촉구했습니다.
유가족들은 2시간 정도의 오체투지 행진으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결정을 앞두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전할 기회라는 마음으로 대통령실을 향해 목놓아 외쳤습니다. 그동안의 간절함을 가득 담아 '특별법 공포를 촉구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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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경 기자 (ba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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