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기후 과학의 AI 혁명

줄리오 보칼레티 유럽·지중해기후변화센터 (CMCC) 과학 책임자 2024. 1. 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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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당국은 인공지능(AI) 화재 감시 시스템인 ‘얼러트캘리포니아(ALERTCalifornia)’를 시범 도입했다. 얼러트캘리포니아는 연기와 같은 자연발화 징조를 감지해 산불 발생 가능성을 소방 당국에 미리 경고하는 시스템이다. 발화 가능성이 큰 지역에 1032대의 고해상도 카메라를 배치해 AI 프로그램이 24시간 감시하고, 영상에 작은 불씨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잡히면 AI가 이를 화재로 인식해 가까운 소방 당국에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직후 산불이 발생했는데, 당시 60여 명의 소방관과 대형 물탱크·불도저가 현장에 투입돼 45분 만에 산불이 잡혔다.AI 기술을 활용해 자연재해 피해를 막은 대표적 사례다. 폭염, 폭우, 폭설 등 기후변화 위기의 심각성이 대두되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혁신 기술, 기후 테크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급발전하는 AI 기술을 이 분야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미 IBM(그래프), 구글(나우캐스트·그래프캐스트), 엔비디아(포캐스트넷), 화웨이(판구 웨더)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AI는 산불, 홍수 등에 대한 데이터가 쌓일수록 이를 학습하면서 더 정교한 재난 예측 능력을 갖게 된다. 재난 발생을 조기에 감지해 피해 확산을 막거나 사전에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기후 문제 분야에 AI를 활용하는 것이 혁명을 불러올 것으로 본다. 다만, 그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보유한 이들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인 만큼 기술을 사적 이익이 아닌 공적 이익을 위해 활용할 방안과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셔터스톡

우리는 지구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했다. 2023년 7월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신경망(AI)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예보 시스템을 갖춘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보다 날씨를 더 잘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① 2023년 11월에는 구글 딥마인드가 자사의 일기예보 AI가 기존 기상예보 모델보다 더 정확한 예측을 해냈다고 발표했다.

줄리오 보칼레티 유럽·지중해기후변화센터(CMCC) 과학 책임자‘워터: 물의 연대기’ 저자

기상 예측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은 물리적 원리에 기반한 방정식의 초기 조건으로 특정 시점의 관측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반면, AI는 장기간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기존 방정식이 명시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역할을 ‘학습’한다. 기존 방식과 AI 기반 방식 모두 슈퍼컴퓨터에 의존하지만, AI는 공식적으로 개발된 이론이 필요 없다.

기상 예측은 항공기의 비행 장소와 시간, 선박의 항로를 결정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민간 및 군사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중요한 건 아직 이 분야에서 AI를 적용하는 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이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러나 AI는 기상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AI 기반 예측은 숙련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다(참고로 ‘네이처’ 논문 저자는 이런 배경지식이 없는 공학자들이다). 하지만 그 영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이버네틱스(인공 두뇌학·cybernetics)의 아버지라 불리는 노버트 위너는 1950년대에 쓴 통계적 예측에 관한 논문에서 특정 성질을 나타내는 시스템의 역사를 이미 알고 있다면, 그 역학을 지배하는 방정식에 대한 지식을 추가한다고 해서 예측이 반드시 개선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위너의 주장은 이론적인 것이었다. 당시에는 관측, 데이터, 컴퓨팅 성능 및 기타 요소의 한계로 인해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주장은 최근 AI 발전과 관련한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지구에 관한 관측 데이터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우주로 발사된 지구 관측 위성은 25개에 불과했지만,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그 수가 997개로 늘어 현재 궤도를 돌고 있는 지구 관측 위성과 기타 위성의 총수는 약 7560개에 달한다. 식물의 성장, 수증기, 인프라 설치부터 적외선 복사, 캐노피 높이, 대기 상태 측정까지, 거의 모든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대한 우주 기반 시설을 통해 우리는 지구 관측의 황금기에 접어들었다.

이 방대한 데이터 아카이브는 인간과 자연이 지구에서 하는 거의 모든 일을 설명한다. 새로운 AI 모델과 계속 확장하는 계산 인프라를 결합하면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역할을 뒤흔들 수 있다.

기후변화를 생각해 보자. 지난 40년 동안 기후 위기에 대한 인류의 대응은 분야별로 구분된 과학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지침에 따라 이뤄졌다. 물리 과학은 기상 예측에 사용하는 것과 공통점이 많은 대규모 지구 시스템 모델을 사용하는 반면, 경제학자와 지리학자는 별도로 그 영향을 정량화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적응과 완화 정책의 역할에 집중한다. IPCC의 이런 분업은 방법론의 분업과도 일치한다. 물리학 기반의 지구 시스템 모델은 제1원리(first principles) 방정식을 따르지만, 경제학자와 영향 모형을 연구하는 이들은 경험적 방법과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는 이론을 조합해 활용한다.

AI는 이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다. 전통적인 기후 모델링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은 작지만, 이미 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기후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아니라 기후 시스템이 우리와 다른 생물들이 사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다. 현재의 과학 이론이나 학문적 패러다임에 구애받지 않는 AI 모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표면의 바이오매스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론하고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산림과 농업을 관리하는 방법을 개선하고 화재나 홍수 위험에 대한 진단 도구와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또 에너지 경제학이 이런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고, 더 넓은 경제와 기후 협상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AI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방법과 함께 이뤄질 것이다.

물론 AI가 과학적 이해를 대체할 수는 없다. 과학은 데이터에서 답을 추출하는 것보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인간의 본질적인 추구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AI의 부상이 예고하는 인식론적 변화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AI는 지금까지 규율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현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너무 복잡해서 이론화하기 어려운 대규모 시스템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규율의 경계를 허무는 궁극적인 탐구 도구인 셈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중대한 정책적 과제를 제기한다. 지구 관측 위성과 컴퓨팅 등 이를 주도하는 인프라가 점점 더 민간 부문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지구 관측 위성의 단일 최대 소유자는 ② 플래닛 랩스(Planet Labs)라는 회사다. IBM, 엔비디아, 딥마인드, 화웨이 등 첨단 기술 기업들이 머신러닝(기계학습)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런 기업들은 막강한 자본과 자원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공공 연구센터를 쉽게 능가할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자선 활동을 펼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공공재를 제공할 의무나 인프라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걱정할 의무는 없다.

디지털 혁명과 눈앞에서 변화하고 있는 자연환경의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지금, AI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 복잡성을 풀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구 수단이 민간에 넘어간 상황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도구가 사적 이익이 아닌 공공재를 제공하고, AI에 관한 질문이 국가의 정당한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답을 도출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① 2023년 11월 14일 구글 딥마인드의 레미 람 연구팀은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기상 예측 AI 모델 ‘그래프캐스트(GraphCast)’에 대한 논문을 게재했다. 이 기상 AI는 약 1분 만에 전 세계 10일간의 날씨를 기존 기상 예측 모델보다 훨씬 정확하게 예측해 낸다. 그래프캐스트는 과거 기상 데이터를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학습 기반 기상예측(MLWP)’ 모델이다. 그래프캐스트는 1979~2017년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가 축적한 약 40년간의 기상 재분석 데이터를 학습했다.

현재 각국 기상청이 사용하는 기상 예측 모델은 ‘수치예보 모델’이다. 이 모델은 대기의 상태와 운동을 슈퍼컴퓨터로 계산해 미래 날씨를 예측하는데, 방대한 계산이 필요해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된다. 반면, 작은 소형 컴퓨터에서도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구동이 가능한 그래프캐스트 예보의 정확도는 기존 방식과 비교해 매우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프캐스트는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기상 예측 모델 대비 온도·압력·풍속·습도 등 총 1380개의 측정 항목 중 90%에서 높은 성능을 보였다. 사이언스는 그래프캐스트를 ‘2023년 주요 연구 성과’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② 전직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이 2010년 설립한 민간 위성 기업이다. 450여 개 위성을 지구 궤도에 배치하고 24시간 지구 전역을 촬영해 관측한 데이터를 판매한다. 구글이 대주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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