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91> 이글 아이] 사람을 위한, AI에 의한,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다
미 국방부는 국제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이 중동의 작은 마을에 집결한다는 정보를 얻고 정밀 타격을 계획한다. 카메라 분석 결과 목표 인물일 확률은 51%. 인공지능(AI) 정보 분석 프로그램은 작전 중지를 권고하고 국방부 장관도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지만, 대통령은 폭격을 강행한다. 그러나 일반인 장례식이었다는 게 밝혀지자 잇따른 보복 테러로 미국 시민이 희생된다.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디선가는 무고한 살상이 벌어진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산다. 알더라도 뉴스 제목만 흘낏 보고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지언정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또 전쟁 같은 하루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하지 않았어도 불쑥, 평범한 삶 속으로 무자비한 세상이 침입해 올 때가 있다.
큰 야망도 없이 무료하게 살아가던 제리에게도 인생이 곤두박질치는 날이 찾아온다. 공군으로 복무하고 있던 형 이든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제리의 통장에 거액의 돈이 입금되고 온갖 무기와 그의 이름으로 된 위조 여권들이 집으로 배달된다. 휴대전화 벨이 울리고 ‘즉시 도망가라’는 경고음이 들려온다. 영문을 몰라 주저하는 사이 FBI가 들이닥친다.
어린 아들 샘을 워싱턴에 보내고 모처럼 여유를 즐기던 레이첼도 전화를 받는다. 길 건너편 광고 화면에 기차를 타고 있는 샘의 모습이 보인다. 제리에게 전화했던 것과 똑같은 목소리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샘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은 공포에 빠진 레이첼은 앞뒤 따질 것도 없이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자동차를 타고 질주한다.
테러 혐의로 체포된 제리는 FBI 수사관 모건에게 심문받는다. 그는 이든이 테러 단체와 관련이 있고 제리도 연관되었을 거로 의심한다. 이든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던 공군 소속 페레스도 수사에 합류한다. 그러나 제리는 전화 목소리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제리, 뛰어내려! 제리, 기차를 타!’ 하는 지시문이 거리의 LED 광고판마다 표시된다.
제리는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FBI는 쫓아오고 목소리의 명령을 거부하면 제재가 따른다. 숨어도 금세 찾아낸다. 전지전능한 신이나 관세음보살의 천수 천안 같은 감시 속에서 제리와 레이첼이 합류한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상대가 목소리의 주체인 줄 오해하고 서로를 원망하지만, 곧 자기와 똑같이 협박받고 있는 걸 알게 된다.
모건과 페레스가 제리와 레이첼을 쫓는다. 그러나 모든 걸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목소리는 도로의 신호등을 조작해 마음대로 길을 여닫는다. 속도와 방향을 계산하고 레이첼 대신 브레이크와 가속기를 원격 조작하며 수사대를 따돌린다. 대체 전화 목소리는 누구일까. 그가 원하는 건 무엇이고 제리와 레이첼은 왜 선택된 것일까.
제리는 이든이 테러범이었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명석하고 강직했던 그는 비뚤어진 동생을 품어주는 속 깊은 형이었다. 괜한 열등감과 못난 자존심 때문에 연락하지 않고 살았지만 좀 더 자주 만날 걸, 제리는 후회한다. 이혼 후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힘들었던 레이첼도 직장 때문에 샘과 함께 워싱턴에 가지 못한 걸 자책한다. 목소리를 따라 수사망을 뚫고 도주하면서도 그들은 숨 돌리듯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추격을 잠시 따돌린 목소리는 제리와 레이첼에게 정체를 밝힌다. 그는 휴대전화, 이메일, 소셜네트워크, 신용카드, CCTV를 이용, 개인 정보를 취합, 분석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아리아다. 과학의 발달은 개인 영역의 파괴를 뜻할까. 두 사람은 아리아의 목적과 역할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감시망을 벗어나거나 저항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공군 수사관 페레스는 이든이 국방부의 정보 통합분석 비밀 프로젝트 ‘이글 아이’에 참여, AI 아리아를 관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에 벌어진 중동 오폭과 이든의 죽음이 서로 연결된 채 엄청난 음모가 아리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제리를 이용해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간 아리아는 쓸모가 다한 그를 죽이라고 레이첼에게 명령한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다시는 샘을 볼 수 없을 거라고 협박한다. 레이첼에게 아들이 인생의 전부인 걸 잘 알고 있는 제리는 어서 총을 쏘라며 눈을 감는다.
지능과 정서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보유하고 분석하면 AI도 감정과 마음을 갖게 될까. 불의를 보면 주먹을 휘두르고 싶고, 사랑과 신뢰를 배우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 자신을 희생할까. 가슴이 아프다 못해 눈물이 솟구치는 슬픔을 경험할 수도 있을까.
제리와 레이첼을 쫓던 모건도 뒤늦게 누군가 명령과 협박으로 그들을 조종했다는 걸 눈치채고 사건의 내막을 추리한다. 오늘 밤, 정부 내각과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모인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샘이 소속된 어린이 밴드부가 그 자리에 초청됐다. 그리고 추격 중에 발견된 악기상 주인의 시신과 얼마 전 군에서 도난당한 최신형 폭탄! 사건을 계획한 건 누구일까. 아리아는 어떤 역할을 맡았고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그런데 대체 왜?
앞으로 우리가 도달하게 될 더 먼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로봇이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은 소설과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SF 만화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마법 같은 미래를 살고 있다. 챗GPT나 자동차 자율 주행, 스마트 디지털 도우미처럼 AI도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프로그램 오류겠지만, 미국 전기차 테슬라의 생산 공장 직원이 로봇의 공격을 받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AI의 가능성은 무한한 것 같다. 그러나 최고라고 확신했는데 최악의 선택일 때가 있다. 정상에 선 줄 알았는데 더 멀리 더 높은 산이 보이거나 아군이 적으로 드러날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변화와 발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놓지 않는다면.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던 이든처럼. 형을 믿은 제리처럼. 아들을 구하러 달려간 레이첼처럼. 의무와 책임을 다한 페레스와 모건처럼. 그리고 끝까지 서로를 믿었던 제리와 레이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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