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상호 협력과 '따뜻한 빛' 이론

2024. 1. 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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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봄 '선운사' 가사에 나오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보기 위해 선운사에 갔다가 꽃은 못 보고 밥만 먹고 온 적이 있다.

수혜자인 동백나무는 행위자인 동박새에게 꽃가루를 보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협력관계, 그중에서도 상호 협력 또는 이기적 상호 이익 행동에 해당한다.

'따뜻한 빛(warm-glow)'은 1990년대 경제학에 도입된 개념으로, 언뜻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협력 행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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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과 동박새의 묘한 공생
이기적 행동 속 상호협력관계
인지력과 통제력 갖춘 인간
공동체에 나쁜 선택 왜 할까

어느 늦은 봄 '선운사' 가사에 나오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을 보기 위해 선운사에 갔다가 꽃은 못 보고 밥만 먹고 온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1월에서 3월인 동백나무의 개화기가 이미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개화기가 곤충이 활동하기에는 아직 쌀쌀한 때인지라 동백나무의 꽃가루를 옮기는 임무는 동박새가 담당한다. 수혜자인 동백나무는 행위자인 동박새에게 꽃가루를 보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협력관계, 그중에서도 상호 협력 또는 이기적 상호 이익 행동에 해당한다. 자연계에도 상호적이지 않은, 때로는 불공정한 협력관계나 무임승차 문제가 존재한다. '탁란'으로 엮인 뻐꾸기와 뱁새의 관계가 그렇다.

이처럼 다양한 협력은 자연계에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며 당연히 인간 사회에도 존재한다. 인간 사회의 협력은 그 규모와 범위 면에서 다른 모든 종을 뛰어넘는다. 사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협력을 경험한다. 동료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작은 협력부터 평생 마주칠 일이 없는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도 수준 높은 협력이 이루어진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우리가 왜 이런 이타적으로 보이는 협력 행동을 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미어캣 등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의 예를 들어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협력 행동이 가능해지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집단 내 다른 이의 생존이나 후생을 돕는 것이 집단을 강건하게 만들어 생존과 복지에 도움이 돼야 하며 둘째, 단기는 아니라도 장기적 혜택이 조력 비용보다 커야 하며 셋째, 이러한 계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기억력과 인지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집단이 커질수록 부정행위나 무임승차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모든 종과 달리 보상, 처벌, 배척, 평판 형성 등 다양한 통제 메커니즘을 통해 협력을 유지하고 안정화하며 부정행위나 무임승차를 통제하며 진화해왔다.

생산과 소비라는 대표적 경제행위가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하고 있는 경제학에서 경쟁이나 무임승차가 아닌 보상도 없고 상호적이지도 않은 '협력'은 설명이 필요한 단어다. '따뜻한 빛(warm-glow)'은 1990년대 경제학에 도입된 개념으로, 언뜻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협력 행동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기부 행위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 이유가 수혜자의 후생만을 고려한 순수하게 이타적인 동기라면 국가가 대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줄 경우 기부 행위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기부를 하는 이유가 본인이 따뜻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심리적 보상 때문이라면 이는 순수하게 이타적이라기보다 이기심에서 출발한 이타적 행동이자 협력 행동이라는 것이다. '따뜻한 빛' 이론은 이러한 분석틀로 길에 쓰러진 사람을 위해 119에 전화를 걸고, 설명틀로 공공재를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내고,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한여름에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행동을 설명한다.

2014년 자연기후변화저널(Nature Climate Change)에는 사람들이 친환경적인 선택을 할 때 실제 체온이 올라가고, 반대의 선택을 할 때 체온이 떨어진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말한 상호 협력이 가능한 조건을 분명 두루 갖추고 있다. 다른 사람이 또는 내가 상대방에게 한 친절과 온정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행위도 오랫동안 기억하며, 오늘 내가 타인을 돕지 않는다면 내가 곤궁할 때 아무도 나를 돕지 않을 것임을 알 만큼의 인지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우리가 '따뜻한 빛' 대신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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