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간 오찬 모자라 37분 차담 … 尹, 총선사령탑 한동훈에 힘싣기
민감한 얘기 피하고 민생 집중
"김건희여사 문제 논의 안해"
대통령실, 사천 논란 언급않고
국힘도 명품백 이슈제기 자제
주택·교통등 총선공약화 조율
韓, 내일 수원서 철도지하화 공약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2시간37분에 걸친 마라톤 오찬 회동을 했다. 대통령실에서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며 촉발됐던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윤 대통령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난 지 6일 만에 다시 용산 대통령실로 한 위원장을 초청해 점심을 함께한 것 자체가 논란을 해소하고 한 위원장을 재신임한다는 신호를 주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당정 갈등이 촉발되긴 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후 사태 해결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난 21일 대통령실의 한 위원장 사퇴 요구에 따른 논란이 보도된 뒤 한 위원장은 "국민 보고 나선 길"이라며 "할 일을 하겠다"면서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튿날에는 대통령실이 사퇴를 요구한 일을 공식화하는 한편 "나의 임기는 총선 후까지"라며 비대위원장직 수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23일 한 위원장이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 함께 사고 상황을 점검했고 서울로 돌아올 때에도 대통령 전용열차 탑승을 권유했다. 이날 오찬 회동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 분석이다.
2시간가량 오찬을 한 다음 윤 대통령 집무실에서 37분간 별도의 차담을 진행한 것도 지금까지 실시된 전임 당대표 오찬 회동과 다른 부분이다. 이준석 전 대표와는 90분가량 점심식사를 함께했고 김기현 전 대표도 따로 차담을 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분위기가 안 좋고 이견이 컸다면 2시간 오찬에 차담까지 별도로 했겠느냐"며 갈등이 사실상 봉합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당은 당의 일을 하고 대통령실은 대통령실의 일을 하자'는 원칙에 묵시적으로 합의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사퇴 요구를 촉발시킨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에 대한 대응은 대통령실이 할 일인 만큼 당에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대통령실에서 한 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명분으로 삼았던 사천(私薦) 논란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실이 언급하지 않는 식이다. 이날 한 위원장이 오찬 직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천은 당이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다시 밝힌 점도 이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총선을 앞두고 한 위원장이 내세운 '586 운동권 청산'이라는 대의가 '사천 논란'에 앞선다는 인식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공유했다는 풀이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결국 이번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윤 대통령이나 한 위원장 모두 공멸을 피할 수 없다"며 "선거에서 이기려면 미래 가치를 내세워야 하므로 사천 논란에도 '운동권 심판론'을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대통령실도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더불어민주당 86 정치인들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지역구에 여권 주요 인사들이 속속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데, 정치권은 그 뒤에 한 위원장의 의중이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서울 마포을에서 정청래 민주당 의원과 붙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인천 계양을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희숙 전 의원은 서울 중성동갑에서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과,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영등포을에서 김민석 민주당 의원과 대결을 준비 중이다.
다만 이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찬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등 민생문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 정치인 테러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이 주요 주제였고 김 여사 의혹·김경율 비대위원 거취 등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와 관련해서도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고 답했다. 이처럼 민감한 얘기를 피하는 행위 자체가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셈이다. 김 여사에 대한 대응과 향후 공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논란 역시 당정 갈등의 뇌관으로 잠복해 있을 전망이다.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 관련 입장 표명이 늦어지거나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당에서도 언제까지 이를 무시하고 지나가긴 어렵기 때문이다. 공천 갈등 역시 친윤계 의원들과 엮이면 대통령실에서 불만을 표시하면서 분란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오는 31일 수원을 방문해 '철도 지하화' 관련 총선 공약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과의 오찬 및 차담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는 수원을 찾아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을 주제로 기업인들을 만나고 관련 정책도 발표할 방침이다.
[우제윤 기자 / 안정훈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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