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노동시장 개혁이 최고의 저출산대책
스펙쌓기 투자하려면
다자녀 출산은 불가능
정규·비정규직 격차 해소를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나뉘는 사회다. 한번 정규직이 되면 노동법과 노조의 보호를 받아 고용이 안정된다. 연차가 쌓이면서 월급이 또박또박 오른다.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린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4%다. 2004년만 해도 65%는 받았는데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반면 정규직으로 가는 통로는 더 좁아졌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옮길 확률은 2006년 11.7%에서 2021년 3.7%로 급감했다. 이러니 청년들이 대기업 정규직에 목을 매는 것이다. 신분이 갈리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8년 파견법이 법제화되면서 비정규직이 확대됐다. 사측이 기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내몰 수는 없는 노릇. 당연히 청년을 대상으로 신규 채용을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15~29세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중이 점차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 41%를 넘어섰다.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쭉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의 늪에 청년 다수가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청년은 '스펙 쌓기'로 대응했다. 명문대 졸업장을 비롯해 온갖 스펙을 쌓았다.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신분제의 최상층으로 진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매출 500대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이 되기 위한 취업 경쟁률은 80대1이 넘는다. 바늘구멍이다. 청년의 좌절은 깊고 광범위하다.
부모가 그 좌절을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 자식이 신분제의 상층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이른바 '몰빵 투자'를 한다. 자녀가 명문대 스펙을 쌓도록 살인적인 교육비를 대는 것이다. 그 결과는 지독한 저출산이다. 부모가 자녀를 여럿 낳으면 자녀 1명당 투자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스펙 쌓기를 제대로 지원할 수 없다. 결국 아이를 덜 낳게 된다. 청년도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 부모의 지원을 받아 대기업 정규직이 되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아이를 여럿 낳지 못한다. 자신의 부모처럼 자녀의 스펙 쌓기를 지원하려면 다자녀는 비합리적 선택이다. 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청년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녀 교육에 투자할 재원 자체가 부족하다. 아이 낳는 게 두렵다.
이런 저출산 구조를 깨려면 '정규직·비정규직 신분제'를 타파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공제 개혁이 시급하다. 한국은 연공급의 기울기가 너무 가파르다. 근속 30년 직원은 신입의 3.3배를 받는다. 일본(2.4배)은 물론이고 서유럽(1.7배)보다 정도가 훨씬 심하다.
이러면 근로자가 고령화될수록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취업자 평균연령이 2000년 40세에서 2022년 46.8세로 치솟았고 2030년에는 49세가 될 거라고 한다. 연공급의 기울기를 낮추지 않으면 기업은 인건비 폭탄을 맞게 될 것이고 청년 채용을 더욱 줄일 것이다. 실제로 이철승 서강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55세 이상 근로자 비중이 높고 연공급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청년 고용이 줄어들었다.
연공제의 대안은 직무급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직무에 맞게 급여를 책정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기업은 정규직을 채용해도 연차에 따라 계속 급여를 올려줄 필요가 없으니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당연히 정규직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게 된다. 청년은 신분제 상층으로 여겨지는 일자리를 놓고 사투를 벌이는 경쟁을 덜하게 될 것이다. 과도한 스펙 쌓기와 사교육에 돈을 덜 쓰면서 보다 홀가분하게 출산을 결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행은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 압력'이 저출산의 핵심 원인이라고 했다. 노동시장의 신분제는 그 경쟁 압력의 근원이다. 노동시장을 개혁해 신분제를 깨는 게 최고의 저출산 대책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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