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픈 영화, 세상 나오는데 도움될 기회 덥석 잡았죠”

김은형 기자 2024. 1. 2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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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다큐 ‘길위에 김대중’ 내레이션 맡은 배우 장현성
‘길위에 김대중’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장현성. 명필름 제공

“선생의 청년시절이 정말 잘생겨서 깜짝 놀랐어요. 중년 이후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남주(인공) 비주얼이 저 정도 영화는 무조건 성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하하.”

28일 오후 서울 씨지브이 용산. 김대중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 관객과의 대화에서 배우 장현성이 말했다. “영화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이냐”는 관객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SBS)의 부드러운 이야기꾼 장현성은 이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납치·사형선고 겪고도 정치보복 안한 사회적 편견·세간의 시선 넘어선 분”
‘담담한 전달’ 애썼지만 감정 흔들려
고뇌·두려움의 연서 ‘옥중서신’ 감동


객석 꽉 채운 건 김대중 선생의 힘
“청년시절 정말 잘생겨서 깜짝 놀라
저 정도 남주 영화는 무조건 성공”


“영화 ‘싱글 인 서울’에 출연하면서 무대 인사를 다닐 때 제작자인 심재명 대표가 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내레이션 할 마음이”라고 말을 꺼냈는데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제가 할게요!” 답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시국에 자칫 정치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영화에 참여한다는 게 배우로서 부담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제가 하고 싶은 작품만 골라서 할 수 있는 단계의 배우도 아니지만 다행히도 하기 싫은 작품은 안 할 수 있는 정도의 배우이긴 합니다.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데 직업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그건 부담이 아니라 큰 기회죠. 그 기회가 온 거 같아서 덥석 잡았습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끝내고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구체적인 이유를 보탰다. “김대중 선생은 어떤 사회적 편견이나 세간의 시선을 넘어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적으로도 존경받는 인물이잖아요. 무엇보다 납치와 사형선고 같은 큰 인생의 굴곡을 겪으시면서도 단 한 차례의 정치보복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로만 국민대통합을 외치는 이들과 달리 이를 유일하게 실천한 멋진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월28일 CGV 용산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배우 장현성(가운데)과 민환기(오른쪽) 감독.

장현성은 오래 전 한 독립영화 출연작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을 때 추첨 선물 15개를 준비했는데 관객 12명이 참석했던 것을 떠올리며 “오늘 좀 일찍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객석이 비어서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 참여 관객 모두와 소주를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했던 좋은 기억이 있어 ‘오늘도 열심히 해야지’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시작 10분 전부터 나이 지긋하신 관객부터 군인, 청년 등 다양한 관객이 자리를 속속 채우는 걸 보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고 했다. “제가 정우성도 아니고 (민환기) 감독님이 박찬욱 감독도 아닌데 이렇게 넓은 객석을 꽉 채운 게 김대중 선생님의 힘 아닐까요?”

그는 ‘길위에 김대중’ 내레이션의 포인트를 ‘담담함’에 맞췄다. 그럼에도 마지막 내레이션, 김대중이 광주로 가는 여정을 알리는 “광주는 16년 만의 방문이었다”에서 그는 “광주는, 16년 만의 방문이었다”고 한 템포 쉬면서 담담하지만 먹먹한 감정을 실었다. “다양한 작품의 내레이션에 참여하면서 내레이터 본인이 먼저 감정 속에 들어가 시청자나 관객의 감정을 흔들어놓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왔어요. 이 작품 역시 감독의 언어를 운반한다는 담담한 마음으로 임했는데 저 역시 89학번이다 보니 당시의 장면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부채감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영화 속 가장 큰 감동 포인트로 김대중의 옥중서신을 꼽았다. “배우자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연서이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의 고뇌이면서도 죽음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두려움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그 와중에 옥중에서 맨드라미가 자라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쓰신 부분이 정말 뭉클했죠.”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 포스터

최근 폐관위기를 겪은 소극장 ‘학전’에서 배우로 성장한 장현성은 동료들과 학전 살리기를 위한 공연 프로젝트 3개의 기획을 마쳤다. “채무 등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김민기 선생님 혼자 책임지시기에는 그동안 너무 많은 희생을 하셨어요. 그 힘든 시기에 그 양반 등을 밟고 와서 우리가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그 등에 묻은 흙이라도 털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이야기를 하면서 공연을 기획하게 됐어요. 모두 전회 매진이어서 관객분들께 감사할 따름이죠.”

그는 올해 유독 바쁠 거 같다고 했다. 안판석 감독과 작품을 준비하고 있고, 넷플릭스 드라마에도 참여하며 3월 말 아시아 초연을 앞둔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의 연습으로 분주하다. 드라마와 영화에 바빠진 배우들의 무대 나들이가 드문 데 비해 그는 학전의 그 시절처럼 여전히 무대를 사랑한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무대는 배우로서의 나를 담금질할 수 있는 곳이라서 언제나 설레고 기뻐요.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계속 무대에 오르고 싶습니다.”

글·사진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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