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조작으로 따낸 평가등급 … 속아서 입원한 어르신 환자들

김정범 기자(nowhere@mk.co.kr), 박동환 기자(zacky@mk.co.kr) 2024. 1. 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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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등급 가산수가 못챙겨
족집게 과외처럼 컨설팅받아
평가때 현장확인 절차 없이
자체 의무기록이 유일한 지표
중증환자 많으면 낮은 점수
정부 정책과도 정면 배치돼

◆ 요양병원 대해부 ◆

요양병원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급증하는 가운데 출입구 옆에 인증의료기관이라는 홍보용 표지가 붙어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 29일 병원 관계자가 들어가고 있다. 김호영 기자

"서류 작업을 잘하고, 가공하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업계에 만연해 있다."(서울 A요양병원 행정부장)

"현 평가 제도는 병원 간 과도한 경쟁과 각종 부정 조작 행위를 유발하고 있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위해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서울 B요양병원 원장)

환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병원을 소개하고 병원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현행 요양병원 평가 시스템을 업계에서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평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병원 종사자들은 다 알기 때문이다. 외부에 공개된 평가 등급을 믿고 찾아가는 환자만 '호구' 노릇을 하고 있다.

요양병원 평가는 2008년 시작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입원급여 적정성 평가'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2013년부터 실시하는 '인증평가 제도'로 이원화돼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특히 적정성 평가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병원 안전시설과 장비 등의 사항을 4년 주기로 평가해 인증 획득 여부를 평가하는 인증평가 제도와 달리 적정성 평가는 전국 1400곳이 넘는 병원들을 점수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하는 방식이다.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는 수가를 청구하는 모든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인력 현황,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 정도, 환자 상태(욕창 등)를 비롯한 의료 서비스에 대해 평가한다. 전국 요양병원을 점수 구간에 따라 1~5등급으로 구분하다 보니 데이터 조작이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낮은 등급을 받은 요양병원은 평가지표를 못 믿겠다며 아우성을 친다.

서울 소재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행정직원은 "의사·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등 주요 항목에서 1등급을 받았지만, 종합점수는 5등급을 받았다"며 "업계에서는 점수를 높이기 위해 수백만 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어떻게든 등급을 높이려는 것이 공공연한 관행"이라고 말했다. 중증환자들을 상대로 하는 병원이 적정성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것도 맹점으로 지적된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 상태가 개선이 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시간에 상태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중증환자가 많을수록 평가에서 불리해진다.

임선재 요양병원협회 부회장(더세인트요양병원 원장)은 "중증환자를 요양병원에서 돌볼 수 있게 하려는 정부 정책 방향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요양병원 관계자는 "노인 환자 특성상 욕창 발생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상대평가를 하다 보니 욕창 환자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등급이 떨어진다"며 "환자의 특수성을 고려한 면밀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서류 평가로 등급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감독기관이 현장을 확인하는 과정은 없고 병원 스스로 작성한 의무기록이 사실상 유일한 평가지표가 된다. 극단적인 경우 날조된 의무기록을 제출해도 큰 사고가 발생해 사후 감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조작 사실이 들통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병원들이 평가에 목매는 것은 하위 등급을 받은 병원은 재정적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평가 결과, 하위 5% 이하 기관은 평가 발표 직후 2개 분기 동안 요양병원 입원료에 가산수가 등을 지급받지 못하고, 적정성 평가 연계 지원금 적용에서 제외(환류)한다. 병원에 따라 수억 원에 달하는 돈을 지급받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 같은 평가체계에 대한 요양병원들의 불신·불만은 상시적으로 잠복해 있다가 소송으로 표출되곤 한다. 평가에서 5등급을 받은 요양병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살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서울경찰청이 수사에 나섰던 서울 소재 한 요양병원의 적정성 평가 기준은 1등급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1등급을 받았으니 괜찮은 병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양병원 종사자들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당국은 문제가 된 병원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실시하는 등 사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평가지표와 평가자료의 정확성을 비롯한 평가체계 전반에 대해 재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범 기자 / 박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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