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병립형이냐, 준연동형 유지냐···정당별 선호와 유불리 평가

조미덥·김윤나영 기자 2024. 1. 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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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1.29 박민규 선임기자

총선이 70여일 앞으로 몰린 상황에서 여야의 현실 가능한 비례대표 선거제도 선택지가 크게 두 가지 좁혀지고 있다. 권역별 병립형 제도로 합의하거나 여야 합의 없이 현 제도인 준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면서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비례연합정당)을 만드는 방안이다.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지도부의 결단에 따라 조만간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전국 단위든, 권역별이든 병립형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9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하기 쉽고 직관적인 선거제를 만들 의무가 있다”고 민주당에 병립형 회귀를 촉구했다. 그는 “준연동형 비례제는 20대 국회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야합의 산물”이라며 “비례연합정당은 표를 얻기 위한 이합집산”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준연동형 유지와 병립형 회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상태로 수개월을 보내다 더 이상 미루기 힘든 마지노선에 이르렀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에 나와 “병립형으로 돌아가서 권역별 비례로 하는 안과 현재의 (준)연동형제를 유지하면서 시민 세력, 또 제정당들과 함께 연합비례정당을 만드는 안이 있다”며 “조만간 지도부가 결정을 하고 이번주 안으로 당내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권역별 병립형으로 결정되면 지역 구도를 완화하고 위성정당을 만들 필요가 없지만 이 대표가 비례제 확대 약속을 파기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비례대표 원내 진입 문턱이 당 지지율 3%에서 7%대로 높아져 양당제의 폐해가 심화되고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차단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준연동형 유지를 선택하면 민주당이 정치개혁 약속을 지키고 민주·진보 진영의 선거연합에 용이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논란이 됐던 위성정당 폐해가 재현된다.

권역별 병립형 : 양당제 폐해 심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눈을 감고 정청래 최고위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2023.12.22 박민규 선임기자

권역별 병립형은 전국을 수도권과 중부(충청·강원·대구·경북), 남부(호남·부산·울산·경남·제주)로 나누고,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 47석의 비례 의석이 권역별로 14~18석씩 나눠진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지난 총선 결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한 쪽으로 이익이 쏠리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이, 호남에서 국민의힘이 당선되기 쉬워져 지역 구도가 완화된다.

민주당에서 정청래·장경태 등 최고위원 다수가 지지한다. 이름을 내걸지 않지만 절반에 가까운 의원들이 병립형 회귀를 선호한다고 한다. 정 최고위원이 당원 투표로 선거제를 결정하자고 하는데, “당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홍 원내대표)등 지적으로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

민주당은 최근 권역별 병립형에 더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모두 후보로 등록하는 이중등록제를 도입하자고 국민의힘에 제안했다. 대구·경북에 출마했다 낙선한 민주당 지역구 후보에게 비례대표 당선 가능성을 주는 안이다. 국민의힘이 수용한다면 권역별 병립형 전환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권역별 병립형은 거대 양당에게 지나치게 유리해 양당제의 폐해를 심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권역별로 당선 가능 득표율이 7%대로 올라가 소수 정당의 진입 장벽이 높아진다. 정의당, 개혁신당, 개혁미래당(새로운 미래+미래대연합) 등 제3지대 정당의 당선이 그만큼 어렵다. 김효은 새로운미래 대변인은 이날 정 최고위원의 당원 투표 주장을 “민주당 당론인 준연동형 비례제를 뒤집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직전 “제3·4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구조를 만드는 건 이재명이 평생 가진 꿈”이라고 다당제 전환을 약속한 바 있다. 병립형으로 회귀하면 약속을 스스로 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준연동형 유지 : 위성정당 못 막아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소속의원들이 26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민주개혁진보대연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구 민주당, 비례 연합으로 연동형 대국민 약속을 지키라고 말했다. 2024.01.26 박민규 선임기자

준연동형 비례제는 지난 총선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제외한 야당들의 합의로 도입됐다. 당시 통과된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지난 총선에선 비례 의석 47석 중 30석에만 준연동형을 적용했는데, 이번엔 47석 전체로 확대된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제와 관련해 아무 합의도 하지 않겠다는 ‘노딜’을 선언하면 준연동형 비례제가 적용된다.

민주당에선 이탄희·김상희·김두관 등 의원 80명이 지난 26일 “병립형 야합은 ‘윤석열 심판’ 표를 분산시키는 악수 중의 악수”라며 “(준)연동형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중 절반 가까이가 실명을 걸고 준연동형 유지를 지지한 것이다. 이들은 민주·진보 진영이 함께 비례대표용 비례연합정당을 구성하고, 지역구에서도 연대에 나서자고 했다. 민주당 입장에선 정치개혁 약속을 지켰다는 명분과 반윤석열 진영의 리더 위상을 가질 수 있다. 제3지대 정당 입장에선 권역별 병립형보단 상대적으로 의석 얻기가 수월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위성정당 창당으로 인한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 원내대표는 이를 의식한 듯 “비례연합정당 역시 위성정당이란 여당과 언론의 비판이 있을 것”이라며“20여석의 비례대표 선정을 놓고 참여한 세력들 간 지분 논쟁도 굉장히 심각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노딜’을 선택할 것에 대비해 위성정당을 만들기 위한 실무적 준비에 착수했다. 윤 원내대표는 “위성정당 준비는 민주당의 폭거에 대응한 조치일 뿐 위성정당으로 선거 치르길 바라진 않는다”고 했다.

이밖에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안한 절충안도 있다. 비례대표의 절반(23석)에만 준연동형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준연동형 제도를 유지하면서, 거대 양당에 위성정당을 만들 유인을 크게 줄인 방안이다. 실제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는다면 준연동형 의석은 소수 정당 몫으로 배정될 수 있다. 다만 국민의힘의 수용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원들이 25일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권역별 병립형 개악시도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25 박민규 선임기자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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