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터질 때까지 발만 동동…문턱 높은 '강제 입원'

정심교 기자 2024. 1. 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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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공포의 거리 ③
[편집자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습격한 만 15세 소년은 정신질환이 의심돼 응급입원 조치됐다. 2023년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도 정신질환과 무관치 않다. 국민들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지만 사법입원제 도입 등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 개선은 감감무소식이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습격한 만 15세 소년이 정신질환을 호소해 응급입원 조치되고, 지난해 분당 서현역에서 '묻지마 흉기난동'을 벌인 최원종이 2020년 '분열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았지만 치료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의료계에선 '강제 입원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황재욱(대한신경정신의학회 수련위원) 순천향대 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입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 환자의 입원이 까다로워졌다"며 "정작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입원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핵심은 '강제 입원 문턱의 강화'다. 강제 입원 종류 가운데 가장 흔한 보호 입원의 경우 기존엔 보호의무자(직계혈족·배우자)가 신청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의 입원 소견만으로도 환자가 강제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뀐 개정법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보호의무자 2인이 '모두' 동의해야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게 됐다. 전문의 가운데 1명은 국공립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여야 한다.


여기서 보호의무자엔 부모·조부모 등 '직계'만 인정된다. 직계가족 2명을 채우지 못해도 형제·자매·삼촌·이모가 대신 동의할 수 없다. 예컨대 배우자가 없는 정신질환 환자가 부모 중 1명만 있으면서 조부모가 돌아가셨거나 중증 치매에 걸려 판단력이 흐린 경우, 조부모가 없고 부모는 있지만 이혼 등으로 부모 중 한 명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 강제 입원의 길은 사실상 막힌 셈이다. 황재욱 교수는 "입원 치료받아야 하는 정신질환 환자가 입원 치료를 거부해도 충분히 치료받을 여건이 조성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했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오는 단계부터 쉽지 않다는 것. 환자가 정신질환 증상으로 난폭성을 띠는 경우 가족이 힘으로 제지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황재욱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사건·사고가 나야 경찰이 그때야 개입해 환자를 병원에 데려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건·사고가 나기 전까지 환자가 협박하거나, 기물을 부수거나, 가정 폭력 직전까지 가더라도 경찰이 개입할 수 없어 사실상 주변인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이유로 정신질환 치료를 손 놓고 있는 환자가 적잖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조현병 환자는 21만4017명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3575명은 1년간 조현병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청구내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성 의원은 "현재 국내 허가된 조현병 치료제는 총 397개다. 이 중에서 7개를 제외한 나머지 약제는 모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2년 한 해만 조현병 환자 3575명이 사실상 약물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료 급여 환자 수가, 하루 최대 5만1000원
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도 일이다. 정신과 전문병원, 종합병원 등의 정신과 병동이 점차 줄고 있어서다. 황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는 외과 계열과 달리 딱히 '수술'이 없고 약물 치료 위주여서, 인건비는 많이 들지만, 수익은 낮은 과로 손꼽힌다"며 "그러다 보니 병원 측에서 정신과 병동을 가능한 한 적게 운영하려는 추세"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정신과 병동엔 다른 진료과의 환자가 한 곳에 입원할 수 없어, 회전율이 낮고 공실률은 높다.

게다가 '의료 급여 환자'(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의료급여법에 의한 수급권자 등)의 경우 병원에선 받기 꺼리는데, 보호자는 장기간 입원시키고 싶어 하는 등 '밀어내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2017년 조현병 입원환자 가운데 의료 급여 환자 비율이 전체의 60.5%에 달했다. 이런 의료 급여 환자에 대해 병원이 받을 수 있는 입원 수가는 '일당 정액제'에 따라 하루 최대 5만1000원이다. 이 안에 △병실료 △밥값 △치료비 △검사비가 포함돼있다.

원래는 '약값'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반발로 지난 2019년 6월 약값은 별도 청구할 수 있도록 빠졌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씨는 "보호자 입장에선 환자를 장기간 입원시켜 병원에서 케어해주길 원하지만, 병원 입장에선 입원 병실료도 안 되는 값으로 환자를 받기는 힘들지 않겠나"라며 "정신과 단과병원 시설이 낙후되고, 치료 질도 떨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정신질환 치료 방치를 막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국가가 이른바 '안인득 방화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총 4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국가의 책임론에 무게가 점차 실리는 분위기다. 그 대안으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선 '사법입원제(새 명칭은 국민안심입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정부에 주장해왔다. 2019년 안인득 사건을 계기로 사법입원제 도입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인권침해 논란 등에 부딪히며 도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정신질환 병력을 가진 이들의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지난해 8월 4일,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법입원제란 법관의 결정에 따라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는 제도다. 정신질환자 입원은 본인 의사에 따른 자의적 입원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가 입원을 거부할 경우 비(非)자의적 입원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학회 관계자는 "사법입원제라는 용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해 '국민안심입원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제안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의료계에선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진료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씨는 "정부가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필수의료 핵심으로 여겨,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신질환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질 좋은 치료가 가능하게 하려면 진료 수가를 현실화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신질환은 예방할 수 있으며,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 또는 블루터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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