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국가보안법 위반 첫 공판 9개월 만에 열렸지만 '파행'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고 반정부 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은주(54)·박현우(49) 전 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과 고창건(54)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기소된 지 9개월여 만에 첫 공판이 열렸지만 피고인과 변호인들이 "졸속 재판"을 주장하며 집단 퇴정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신분 확인부터 파행…결국 피고인 없이 재판
그동안 재판부는 4차례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피고인들이 원했던 국민참여재판 여부를 심리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내용이 매우 많고 신중한 법리적 검토가 필요한 점 등을 들어 배제 결정을 내렸다. 이에 피고인 측은 불복했으나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했다.
국민참여재판 여부에 대해 대법원까지 판단 받고 나서야 공판준비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날 첫 공판에서는 검찰 측 공소사실 설명과 이에 대한 변호인의 입장 표명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재판의 첫 시작인 피고인 신분 확인 과정부터 차질이 빚어졌다. 재판장이 한 피고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요구하자, 피고인 측 법률대리인인 장경욱 변호사가 암 환자에 대한 신분 확인이 지나치다며 이를 거부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장이 검찰을 통해 피고인 신분을 확인하면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장 변호사가 재판부 자리까지 다가가 항의를 해 재판장이 법정 경위를 부르는 사태까지 났다.
이어 장 변호사는 재판 녹취록을 공판 조서에 넣어달라는 요구를 했다.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이 방대하고 방어권 차원에서 재판 녹취록을 조서에 남길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 공판준비 절차 과정에서 거부 의사를 밝혔고 이날 재판에서도 불허한다고 강조했다.
재판장이 검찰 공소사실을 들으려 할 때, 장 변호사는 재판부가 형사소송법(266조 10의 1항)을 어겨 재판을 졸속으로 진행하려 한다며 항의했다. 법원은 공판준비기일을 종료할 때 검사, 피고인, 변호인에게 쟁점 등의 결과를 고지하고 이의 유무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이 집단으로 퇴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재판부는 '필요적 변호 사건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이 재판 거부 의사를 표시한 후 퇴정한 후에는 피고인과 변호인 참석 없이 재판을 열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검토한 뒤 피고인들과 변호인들 없이 재판을 진행했다.
북한 지령에 지하조직 설립?…"위법수집 증거"
이후 강 전 위원장은 박현우 도당위원장과 고창건 사무총장과 공모해 제주에서 이적단체 'ㅎㄱㅎ'을 조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북한 문화교류국으로부터 조직결성 지침과 조직 강령‧규약을 전달받았으며 노동과 농민, 여성 등 부문 조직 결성이 이뤄졌다고 검찰 공소사실에 적혀 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들은 수시로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들과 외국 이메일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교신하는 '사이버 드보크 방식'으로 지령과 보고서를 주고받았다.
검찰은 "이들은 지령에 따라 진보당 도당 당원 현황을 보고하거나 '전국민중대회'와 '한미 국방장관 회담 규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정부 활동을 선동했다. 또 북한 대남공작전략에 이익이 되는 민주노총 투쟁 일정, 이적단체 후원회 명단, 진보단체 동향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이들 이적단체가 성장 가능성 있는 지역정당 대표와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포섭해 그 영향력을 활용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진보당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주노총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당과 노동, 농민단체에 진출해 해당 단체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하려 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공판준비 과정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에 대해서 전면 부인했다. 특히 "검찰 증거를 보면 대부분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다. 일부 증거는 해외에서 사법공조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등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거나 영상 증거는 원본 동일성이 의심된다"며 검찰 증거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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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 고상현 기자 koss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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