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투성이 된 몸에 주삿바늘 찌르는 모녀…“하루하루가 전쟁”
‘태안 일가족 사망’ 유서에도 “1형 당뇨 딸 치료로 경제적 어려움”
인슐린 주입기 등 요양급여 대상서 제외…환우회 “정부 지원 확대돼야”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나는 '5분 대기조' 엄마다. 딸이 갑작스레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뒤로는 언제 어디서든 딸에게 달려갈 준비를 해놓는다. 내 부주의로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휴대폰과 스마트워치를 한 번도 꺼둔 적이 없다."
울산에 사는 한은주(가명·43)씨는 '1형 당뇨'를 가진 김은채(가명·15)양의 어머니다. 김양은 첫돌을 앞둔 11개월 무렵 1형 당뇨 판정을 받았다. 한씨는 걸음마를 떼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 김양이 또래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딘 줄로만 알았다. 김양은 분유도 거부하고 물만 한 번에 200ml를 벌컥벌컥 마셨다. 음식은 먹는 족족 토했고, 갈수록 소변량은 늘어갔다. 당뇨병의 전형적인 증상인 다음·다식·다뇨였다.
1형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을 생산하는 베타세포가 파괴돼 혈당 조절 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해버린 질병이다. 생활 습관이나 경구 당뇨약으로 치료하는 2형 당뇨와 달리 1형 당뇨는 평생 인슐린 주사에 의존해야 한다. 1형 당뇨는 발병 원인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바이러스 감염이나 환경적 요인, 면역 기전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김양이 1형 당뇨를 진단받은 뒤부터 김양 가족의 삶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김양의 혈당이 언제 급변할지 몰라 가족들은 24시간 내내 뜬눈으로 김양을 지켜야 했다. 한씨는 첫돌도 안 된 영아의 손끝을 채혈하고 주삿바늘로 엉덩이, 배를 찔러 인슐린을 투여했다. 김양의 온몸이 피멍투성이가 돼도 주사기를 놓을 수 없었다. 김양이 5살 될 무렵 한씨는 한글 대신 혈당 체크하는 법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김양에게 자신의 몸에 주삿바늘 꽂는 법을 알려줬다.
한씨는 2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인형한테 주사 놓는 법을 알려주고 그다음부터는 내 배에 바늘을 직접 찌르면서 딸에게 한 번 해보라고 했다"며 "아이가 자기 배에 주삿바늘을 찌르고 뺄 줄 몰라 하며 우는 모습에 마음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김양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때쯤 한씨는 김양에게 인슐린 펌프를 채웠다. 당뇨 환자의 혈당에 따라 5~10분 간격으로 인슐린을 주입하는 기기다. 한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김양의 펌프를 연동해 10분마다 스마트워치로 딸의 혈당을 확인했다. 김양의 혈당이 급격하게 올라가면 원격으로 인슐린 주사를 놓고, 떨어지면 사탕과 주스를 챙겨 먹으라고 김양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씨가 수시로 딸의 건강 상태를 관리하지만 김양이 생사의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한씨는 "딸이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혈당이 350㎎/dL을 찍길래 주사를 안 맞고 밥을 먹은 줄 알고 원격으로 주사를 놨는데 5분도 안 돼 수치가 260㎎/dL까지 떨어졌다"면서 "알고 보니 내가 주사를 놓자마자 아이가 투약해 급격하게 저혈당이 온 것"이라고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때처럼 저혈당 쇼크로 쓰러질까 봐 학교에 울면서 전화했다"며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언감생심이고 하루하루가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고 했다.
'중증난치질환' 대상서 제외…환자 연평균 300만원 부담
한씨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치료비다. 실제 한국1형당뇨병환우회가 환우 10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4%(740명)가 '다른 지출을 줄여야 할 정도로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의료기기나 소모품을 선택할 때 주저한 적이 있나'는 질문에 93.7%(985명)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환우회 관계자에 따르면, 환우들은 연평균 300만원 정도 의료비를 지출한다. 혈당 측정기나 인슐린 주입기 등은 요양급여 대상에서 제외되고, 1형 당뇨가 중증난치질환에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일 충남 태안에서 한 부부가 1형 당뇨를 앓고 있는 9살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도 유서에 "딸이 너무 힘들어해서 마음이 아프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1형 당뇨 환우 가족들은 '태안 일가족 사망사건'이 남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13살에 1형 당뇨를 판정받았다는 송지영(가명·18)씨의 어머니 이아무개(49)씨는 "딸이 1형 당뇨와 함께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찾아와서 자해를 시도할 정도로 힘들어했다"면서 "한동안 딸이 밤에 베란다에 못 나가도록 막기도 했다"고 울먹였다.
한씨는 "아픈 동생한테 덱스컴(혈당 측정기)을 채워주겠다고 큰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우유 배달을 했다"며 "한 달에 35만원을 벌어서 전부 동생 치료비와 의료기기 구입 비용으로 썼다"고 회고했다. 그는 "큰아들이 얼마 전에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기억하느냐'고 물었다"라며 "뉴스를 보면서 부모의 심정을 알 것 같아 마음이 찢어졌다"고 덧붙였다.
태안 일가족 사망사건 이후 보건복지부는 환우회 요구를 일부 반영해 다음 달부터 소아·청소년 환자는 인슐린 자동주입기 등 의료기기 구입에 대한 본인 부담률을 30%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다만 환우회는 1형 당뇨가 난치성 질환에 가까운 만큼 연령과 관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폭을 넓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씨는 "부모라면 어떻게 해서든 자식한테 100만원이고, 1000만원이고 다해줄 수 있는데 내 몸이라면 과연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다"며 "1형 당뇨를 앓는 성인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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