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승리? ‘김건희’는요? [김민아 칼럼]
지난 26일 국민의힘 제주도당이 4월 총선 및 도의원 보선에 나설 예비후보들을 모아놓고 ‘준법선거·클린선거 선언식’을 열었다. 예비후보들은 클린선거 선언 이후 각자 소신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논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됐다. 사회자가 “그런 질문은 기자회견 이후 개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7명의 예비후보들은 답하지 않았다(<뉴스제주> 참조).
이른바 ‘윤·한 대전’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승리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3일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90도 폴더 인사’를 한 걸 두고도 승자의 아량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갤럽·전국지표조사 등 주요 여론조사(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긍정 평가가 높게 나타난 것도 승리의 증거로 간주된다.
한 위원장은 승리했나? 갈등 봉합 이후 그는 “제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민 눈높이” “국민들이 걱정할 만한 부분”을 언급했을 뿐 사과를 촉구한 적은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론하며 이번 논란의 ‘주연급 조연’으로 부상한 김경률 비대위원은 어떤가. 디올 백 이야기는 접어둔 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더 이상 밝혀질 게 없다”며 ‘김건희 특검’ 반대론을 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서천에서 조우한 후 엿새 만인 29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김 여사 관련 사안은 이 자리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동석했던 윤재옥 원내대표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봉합’을 넘어 확실하게 ‘화해’ 도장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위원장은 이긴 게 아니다. ‘형수 문제’에 눈을 감고 입을 닫겠다는 조건으로 거래 혹은 타협한 거다.
조기 종영된 ‘윤·한 쇼’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봉합의 끝에서 본질은 선명해졌다. ‘김건희’가 남았다. 명품 백도,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사라지지 않았다. 민주공화국의 ‘선출된 최고 권력’ 뒤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존재하며, 선출된 최고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뭐든 할 각오가 돼 있음이 드러났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조계 특권층을 통칭해 “불멸의 신성가족”이라 했는데, 김 여사는 ‘윤석열의 신성가족’으로 등극했다.
명품 백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 한국 정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디올 백은 더 이상 단순한 가방이 아니다. ‘신성가족 김건희’의 불투명성을 상징하는 ‘기호’다.
김 여사는 대선 과정에서 학력·경력 부풀리기 의혹이 일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후 언행은 달랐다. 친분 있는 민간인을 행사에 동반하고, 고가 목걸이를 착용하곤 ‘지인에게 빌렸다’ 했으며, 리투아니아 방문에선 명품 매장을 찾았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에다 대통령실 외교·의전라인 교체 당시 김 여사 관련설도 제기됐다. 취임 전 발생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차곡차곡 쌓여오던 시민의 분노는 디올 백이란 임계점에 이르러 마침내 폭발했다. 지난 26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부정 평가 이유 중 3위가 ‘김 여사 행보’(9%)로 나타났다.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에서 김 여사 행보가 5%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해외 유수 언론들까지 명품 백 사건을 “K드라마”(영국 가디언)에 비유하며 보도하고 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때로 돌아가본다. 시민은 왜 최순실씨(개명 후 최서원)에 분노했나. 선출되지 않은, 아니 임명직조차 갖지 않은 비선이 대통령 뒤에 숨어 권력을 휘둘러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위배해서다.
김 여사는 대통령의 배우자이니 괜찮은가. 300만원 상당의 물품을 받고, 그 자리에서 “남북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라 해도 넘어가야 하나. 백보 양보해 배우자로서 미칠 수밖에 없는 영향력을 인정한다 해도, 실정법 위반 의혹이 있다면 조사·수사받아야 옳다. 당사자도 아닌 남편이 친정권 언론사 대담을 통해 해명한다고 시민을 납득시킬 순 없다.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마찬가지다.
한 위원장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하고 있다. 포퓰리즘이라는 야당 비판에는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걸 하겠다고 하는 게 포퓰리즘이라면, 기꺼이 포퓰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맞선다. 서울경제 여론조사를 보면, 쌍특검 법안(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재의결에 동의한다는 답이 65%였다. 명품 백과 관련해 김 여사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응답은 56%였다. 진정한 포퓰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이 조사를 참고할 일이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뉴스제주> 기사의 제목은 “ ‘디올 백’ 질문에 ‘얼음’ 된 국힘 예비후보들”이었다. 최순실은 전 대통령 박근혜씨의 ‘오장육부’라 불렸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에게 그 이상일 것이다. 한 위원장은 새삼 이를 깨닫고 ‘얼음’으로 돌아가려는 듯싶다.
주권자는 ‘얼음’ 되기를 거부하고 계속 물을 것이다. “한 위원장이 승리했다고요? 그런데 김 여사는요? 명품 백은요?”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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