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란 민병대 공격에 첫 미군 사망…확전 중대기로 놓인 중동
바이든 “책임 묻겠다” 보복 예고
미군 사망으로 확전 임계점 도달 평가
전쟁 확대 우려하는 바이든 딜레마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이 요르단 북부 미군 기지를 공격해 미군 3명이 숨졌다.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중동 지역에서 미군이 사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책임을 묻겠다”며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다. 미군 사망을 확전 임계점으로 꼽아왔던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역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랐다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친이란 민병대, 요르단 미군 기지 공격…3명 사망·34명 부상
바이든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시리아 국경 인근 요르단 북부 미군 주둔지 ‘타워 22’가 전날 밤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미군 3명이 숨지고 3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공격의 사실관계를 아직 확인하고 있다”면서도 “이란이 후원하고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극단주의 민병대가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선택하는 시기와 방식으로 이 공격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응징 의사를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또한 별도의 성명에서 “대통령과 나는 미군에 대한 공격을 용인하지 않겠다”며 “미국과 장병, 국익을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하는 친이란 민병대인 이라크 이슬람 저항군(IRI)은 이번 공격을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이슬람 저항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라크에 있는 미군 점령군에 저항하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우리 국민에 대한 이스라엘 학살에 대응하기 위해 드론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총 4곳을 표적으로 삼았고, 이 가운데 3곳은 시리아에 있다고 부연했다.
CNN 등에 따르면 이들이 공격 대상으로 삼은 곳에는 타워 22를 비롯해 요르단 북동쪽 알루크반 시리아 난민캠프도 포함됐다. 알루크반 난민캠프 인근엔 수백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알탄프 기지가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설명했다.
하마스 고위 관리인 사미 아부 주흐리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며 “미군 3명 폭사는 가자지구에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살해가 멈추지 않는 한 미국 전체가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미군 첫 사망…확전 레드라인?
외신들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미군이 사망한 첫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확전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미국 안팎에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확대 임계점이 미군 사망자가 나오는 시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1일 전문가를 인용해 “중동의 미군 부대에 대한 공격이 늘어날수록 미군의 사망 위험은 커진다”며 “이는 확전 국면으로 가는 ‘레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사망자 발생이 시간 문제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참모들에게 걱정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지난해 10월7일 이후 이란 지원을 받는 민병대가 시리아와 이라크, 요르단에서 미군을 상대로 최소 164차례 공격을 가했지만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면서 “(사망자가 나온 지금) 이전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CNN도 “이미 위태로웠던 중동에서 더욱더 심각한 긴장 고조가 발생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등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안보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점도 미국의 사태 개입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이런 공격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공격했고,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전 세계는 이제 이란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미국의 힘을 보여줄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나아가 “지금 이란을 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P는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미군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미국 정부가 대응할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고 평가했고, BBC는 “미국의 총사령관인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NYT는 이에 바이든 행정부 내 일각에서도 이란 본토의 군사 시설을 때려야 한다는 강경론이 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이란 요원 암살 정도로 보복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확전 부담스러운 바이든…이란 타격 딜레마
관건은 바이든 대통령이 확전을 부담스러워하고, 특히 이란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이란을 직접 타격하라는 압박과 확전을 막아야 한다는 원칙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셈이다.
찰스 브라운 미 합참의장은 이날 ABC방송과 인터뷰하며 “우리는 지역 내에서 광범위한 갈등으로 이어지는 더 큰 충돌의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이란이 미국과 전쟁을 원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BBC는 “이란을 보복 대상으로 삼는 건 상당히 위험한 선택지”라고 평가했다.
이란이 이번 미군 폭사에 대해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어 확전 명분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유엔 주재 이란 대표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란은 이번 공격과 무관하며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 정부를 비판하는 공화당 매파가 이번 공격을 이란과 엮으려고 해서 성명을 내게 됐다”고 몸을 낮췄다. 알자지라는 “지금까지 이란은 미군을 대상으로 공격이 펼쳐질 때마다 선을 그어왔다”며 “이란 정부도 확전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동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길 꺼리는 미국의 분위기는 앞서 여러 차례 감지됐다. 미국은 지난 25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를 위한 협상을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발표했고, NBC는 이날 미 행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중단하거나 제공 속도를 늦추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긴장 완화를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군 사망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둘러싼 중동 긴장감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안보연구기관 수펀센터의 콜린 클라크 연구원은 알자지라에 “미군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이란은 무장단체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들 단체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이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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