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입춘'에 새겨야 할 우리말들
계절은 여전히 한겨울 추위지만 절기상으론 어느새 입춘(立春, 2월 4일)을 앞두고 있다. 입춘은 보통 설을 전후로 든다. ‘설’이나 ‘설날’은 아주 흔한 일상의 말이지만, 의외로 그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설은 음력으로 해가 바뀌는 첫날을 가리킨다. 그것을 ‘정월 초하룻날’이라고 한다. 설(또는 설날)은 그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설이니 정월이니 하는 말을 쓰는 것은 그 자체로 ‘음력’을 얘기한다는 뜻이다.
2023년은 쌍춘년 … ‘재봉춘’도 기억을
‘입춘’은 24절기의 첫 번째로, 봄의 시작을 나타낸다. 24절기는 양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잡지만, 설이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말이라 종종 절기도 음력인 줄 오해받는다. 하지만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한 해를 24개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양력으로 따지며,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매년 여름께 이듬해 절기를 정해 날짜를 발표한다.
올해 입춘은 설날인 2월 10일(이날이 음력으로 2024년 1월 1일이다)을 엿새 앞둔 2월 4일(음력 2023년 12월 25일)이다. 음력으로는 아직 2023년이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입춘은 원래 2023년 설 직후인 2월 4일에 있었다. 그러니 해가 바뀌기 전에 다시 입춘이 든 것이다. 이렇게 한 해에 입춘이 두 번 드는 까닭은 지난해 윤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 달이란 기간이 더해지다 보니 다음 해 설이 돌아오기 전에 입춘이 또 드는 것이다. 이런 해는 여름이 더 길게 느껴진다. 기상청에서 얼마 전 발표한 것처럼 작년에 한반도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덥기도 했지만, 심리적으로도 유난히 무덥게 느껴진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래서 지난해를 ‘쌍춘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국어사전에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재봉춘(再逢春)’이란 말이 올라 있다. 음력으로 윤달이 들어가 1년에 입춘이 두 번 드는 일을 나타낸다. 이 말은 20세기 초 우리 언론에서도 보이는 등 꽤 오래전부터 쓰였다. 가령 1912년 발표된 이상협의 신소설 ‘재봉춘(再逢春)’을 비롯해 1920년 신문에는 “起死回生 再逢春(기사회생 재봉춘)”이란 약 광고가 보인다. 다만 이 말은 ‘입춘이 두 번 듦’이란 본래 의미보다 확대된 의미, 즉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이 새 기운을 얻어 회복됨’을 이르는 말로 주로 쓰였다.
‘입춘축·입춘서·입춘방·입춘첩’ 같은 말
‘재봉춘’은 1957년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한글학회)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이 언중에 활발히 쓰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82년 민중서림의 <국어대사전>에 비로소 올랐다. 이어 1991년 <금성판 국어대사전>과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서 잇달아 표제어로 다뤘다. 재봉춘은 지금은 잘 쓰이지 않아 사라져가는 처지이지만, 입춘과 함께 새겨볼 만한 말이다.
입춘을 앞둔 이즈음엔 봄이 온 것을 기려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글귀를 준비한다. 입춘날에 이것을 대문이나 기둥에 붙여 한 해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그것을 입춘축 또는 입춘서, 입춘방, 입춘첩 등으로 부른다. 모두 같은 말이다. 축(祝)이나 서(書)는 입춘을 맞아 ‘기원’하거나 쓰는 ‘글’이란 뜻을 담은 말이다. 방(榜)은 원래 ‘나뭇조각’을 나타내는 글자다. 이로부터 편액이나 시험의 결과를 알리는 ‘방’의 뜻이 나왔다. 가령 ‘낙방(落榜)’이라 하면 합격자 성명을 적은 방(榜)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시험에 떨어졌을 때 쓰는 말이다. 첩(帖)은 종이가 널리 쓰이기 전 공적이나 일 등을 기록하던 베(巾), 헝겊 따위를 말한다. 여기에서 그렇게 쓴 ‘문서’를 가리키는 뜻이 나왔다.
입춘축·입춘방·입춘서는 모두 사전에 있는 말인데, 널리 쓰이는 ‘입춘첩’은 사전에 오르지 않은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말에서 ‘-첩’이 ‘묶어놓은 책’이란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수첩을 비롯해 사진첩·그림첩·서화첩 같은 말을 생각하면, 입춘첩은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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