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반짝거리지 못한 별밤이와 도담이 [김지나의 그런데 말(馬)입니다]
산업은 커지는데 馬主 책임 규제하는 장치는 전무
(시사저널=김지나 아마추어 승마선수)
2022년 어느 여름날, 충남 부여의 한 농가에서 동물자유연대로 제보가 들어왔다. 한 폐축사에 말 몇 마리가 버려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말들은 마을 주민들이 가져다주는 물과 당근으로 겨우 허기를 달래가며 버티고 있었다. 동물자유연대가 도착했을 때 두 마리는 이미 폐사한 상태였고, 남은 두 마리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모두 경주퇴역마 출신으로 승마장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나이 들고 병들자 버려진 것으로 추측됐다. 사람들은 말들에게 '별밤이', '도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별밤이는 별처럼 반짝이란 뜻으로, 도담이는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란다는 순우리말 '도담도담'에서 따왔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에서 말을 구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아지, 고양이라면 수 없이 겪어본 베테랑들이었지만 말과 같은 '대동물'은 쉽지 않았다. 이동시키는 것부터 먹이와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비교도 안 되는 스케일이었다. 무엇보다 말을 치료하고 보살펴 줄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제주도에서 도축 위기에 놓여 있던 말들을 데려와 돌보고 있다는 시설에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이도 많고 건강이 좋지 않았던 별밤이와 도담이에게는 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가는 것부터가 큰 난관이었다.
어찌저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고통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이미 그곳에는 수십 마리의 말들이 살고 있었다. 때문에 별밤이와 도담이만을 신경써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도담이는 구조된 지 넉 달 만에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안락사 됐고, 별밤이 마저 작년 말 하늘로 떠나고 말았다. 말 무리 속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 탓에 별밤이의 마지막 모습은 1년 전보다 훨씬 더 마른 상태였다. 별처럼 반짝이지도, 탈 없이 잘 놀지도 못했던 두 녀석이었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온온이', 그렇지 못한 다수의 말들
마찬가지로 폐업한 승마장에 버려져 있다가 구조된 '온온이'도 별밤, 도담처럼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발굽 상태가 심각했는데, 발굽바닥이 다 닳아 없어졌으며 속살에는 염증이 생겨 뼈가 바닥으로 내려앉아 땅에 잠시 딛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할 정도였다. 말 발굽은 말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만큼 온온이는 열악한 먹이와 사육 환경 속에 방치돼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별밤, 도담과 다른 점이라면 온온이는 도중에 다른 목장으로 옮겨가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온온'이란 이름도 이곳에서 새로 얻었는데, 따뜻한 사랑을 듬뿍 받으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다행히 지금은 새살이 차오르고 윤기나는 털을 되찾아가고 있다. 절뚝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온온이는 집중 케어를 받은 지 두 달 만에 가볍게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상태다.
말은 야생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말은 손이 많이 가는 동물이다. 강아지만 해도 중형견, 대형견일수록 식비며 약값이 많이 드는데 수백 킬로그램 몸집을 가진 말은 오죽할까. 이미 말은 오랜 세월 사람에게 길들여지고 사람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야생에서 생존할 수 없는 동물로 분류된다. 초식동물이라고 해서 들판에 풀어놓고 풀만 먹고 살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주인의 애정과 섬세한 케어를 받지 못하는 말은 건강하게 살기 어렵다. 말이 야생에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오래전 멸종된 환상일 뿐이다.
마사회에서 경주퇴역마 문제가 마주의 '권한'이라 하는 것은 다시 말해 마주의 '책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책임을 규제하는 장치가 전혀 없다. 말 생산은 공공이 만들어낸 '경마'와 '승마 육성'이란 이름 아래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그 유지관리는 개인이 송두리째 짊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말 산업의 말도 안 되는 구조 속에서, 말들만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저 한 사람의 마주라도 더 책임감을 가지고 말을 대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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