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서울에서 죽겠다”던 26세... 완도 섬마을의 이장 된 사연

박선민 기자 2024. 1. 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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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 용암리 김유솔(26) 이장. /유튜브 '씨리얼'

“엄마, 문자 어떻게 보냈어?”

“내가 보냈겄냐. 이장이 보냈지.”

전남 완도의 한 작은 마을에는 26세 이장이 있다. 이장은 평균 나이 68세 어르신들의 각종 민원 처리부터 자녀에게 대신 문자 메시지 보내주기, 연말 연초 보험 갱신 등 마을 대소사를 전부 책임진다. 어르신들은 이런 이장에게 적극적으로 의지하면서도 손녀처럼 아끼고 지지한다.

지난 21일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 올라온 영상으로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게 됐다. 주인공은 전남 완도 용암리 김유솔(26) 이장이다. 용암리는 완도의 여러 섬 중에서도 완도항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마을로, 공식적으로는 78세대에 약 120명이 거주 중이다. 김 이장은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은 한 40~50명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씨가 이토록 작은 마을의 이장까지 맡게 된 건 용암리가 자신이 자란 고향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디자이너라는 꿈을 갖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향했다가, 20대 초반 고향 용암리로 돌아왔다.

김씨는 용암리를 떠날 당시만 해도 별다른 애정이 없었고, 되레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고향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입시 미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며 “학원과 숙소 등을 알아본 뒤 부모님께 말했더니, 어머니가 반대 안 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죽어도 서울에서 죽을 테니, 내가 죽으면 서울에서 데리고 내려오지 말아달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런 김씨가 다시 돌아오게 된 건 20대 초반 휴가차 고향에 왔을 때 눈에 들어온 모습들 때문이다. 김씨는 “저만 너무 고향이랑 사이가 안 좋은 것 같다는 생각에 일주일 정도 휴가를 왔는데, 넓은 바다에 사람이 없더라. 한적한 자연을 나 혼자 느낄 수 있었다”며 “참 희한하게 그렇게 싫어했는데, 고향이라고 오니까 마음이 진짜 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때 ‘완도에 다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고향에 정착해 사진관 일을 하던 김씨는 24살에 이장직 제안을 받았다. 김씨는 “후보가 총 2명이었는데, (상대 후보) 어르신이 힘이 달려서 못하겠다고 하셨다”며 “찝찝해하시던 어르신께 저희 할아버지 성함을 알려드리니 ‘아 그 집 괜찮지’라며 그냥 시켜 주셨다”고 했다. 이어 “‘스물네 살 이장’이라는 닉네임이 너무 탐나서 이장 일이 뭔 줄도 모르고 했다”며 “아침에 눈 떠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이장 일의 시작”이라고 했다.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김 이장. /유튜브

김씨는 마을 대소사 전반을 책임진다. 어르신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던 장소에 가로등이 설치됐는지 확인하고, 제설제를 더 뿌려 달라는 요청을 해결한다.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의 민원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어르신들을 위해 자녀들에게 문자를 대신 보내주는 등 개인적인 문제를 도와주기도 한다.

어르신들은 김씨를 마치 손녀처럼 대한다. 예를 들어 “결혼 빨리하고 싶은디”라는 김씨 말에 어르신 모두 한마디씩 거든다. “당장 해부러. 언능 해 봐. 좋은 놈 있으면” “아유~ 가려서 가. 잘못가면 평생 고생해” “남자고 여자고 첫째는 인물이여” 등이다.

어르신들은 김씨에게 한참 이 같은 농담을 던지다가도, “결혼은 일생에 한번잉께 잘 해야 돼”라며 진심 어린 조언을 내놓는다. 모두 김 이장을 가족처럼 아껴서 나오는 말들이다.

이외에도 어르신들은 김씨가 다이어트라도 조금 하면 “그러다 쓰러진다”며 걱정하고, 대뜸 “이장! 감 먹어!”라며 먹을 것을 집에 밀어넣는다고 한다.

김씨는 “이런 식으로 예쁨 받는 게 한몸에 느껴진다”고 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손녀처럼 챙겨주시다가도, ‘어리니까 어디가서 무시 안 당하게 우리라도 먼저 높여줘야 된다’며 항상 유솔이라고 안 하고 이장님이라고 불러주신다”고 했다.

김씨는 ‘평생을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느냐’는 질문에 주저않고 “네, 완전”이라고 답했다. 김씨는 “지금 너무 재밌다”며 “제 꿈이 ‘히피 할머니’다. 지금 완벽한 발자국, 발걸음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방 창문으로 바다가 보이고,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어르신들이랑 밥 먹고, 예쁨 받다보니 여기에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우선은 이장을 시켜주실 때까지 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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