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과 탁성의 대표 발라디어, 김범수와 김기태
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창법이 전혀 다른 두 가수가 사랑과 이별이라는 비슷한 주제를 들고 팬들에게 새해 인사를 올렸다. 김범수와 김기태. 미성 보컬의 지존과 탁성 보컬의 기대주가 가져온 곡은 각각 '그대의 세계'와 '해줄 수 없는 말'이다. 전자는 "잊어보려 노력한 사람은 안다.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을"이라는 홍보 글에서도 알 수 있듯 이미 헤어진 사이의 미련을 다룬 듯 보이고 후자는 후렴 가사가 토해내고 있듯 앞으로 더는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수 없는 '예비 타인'들의 이야기다. 두 곡 모두 발라드지만 김범수는 팝, 김기태는 록이다. 스티비 원더를 참고하며 노래를 시작한 김범수, 손성훈과 임재범을 SG워너비에 절인 김기태이기에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데뷔 25주년을 기념해줄 작품의 선공개 곡이어서일까. '그대의 세계'에는 오래 한 길을 걸어온 자만이 전할 수 있는 기품이 있다. 그 기품은 노래 첫 소절에서 이미 완성되고 있다. "꽃잎 한 장 속에 사계가 있고 그대 숨결 속엔 세계가 있다." 빠른 편집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돌 뮤직비디오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사람을 다독이는 느린 뮤직비디오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옛사랑을 향한 그리움을 자연의 이치에 빗댄 김지향의 노랫말은 한 편의 시다. 그 시를 머금어 김범수의 담담한 발성이 듣는 이의 고막을 천천히 연다. 이처럼 찰나의 멋 대신 깊은 맛을 지닌 시와 노래엔 신인 배우 김서안의 절제된 연기가 이끌어온 뮤직비디오의 브리지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현빈의 슬픈 눈빛 만큼이나 힘이 있다. 언젠가 '보고 싶다'를 쓴 작곡가 윤일상은 김범수를 "충만한 보컬 스킬을 가졌지만 노래를 위해 참을 줄 아는 가수"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은 '그대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그리움을 시로 노래한 김범수와 달리 김기태는 정공법으로 갔다. 일단 반주없이 들이치는 첫 가사 "널 잊을 수 있을까"부터가 그렇다. 여기서 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잊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과 같은 말이다. 곡이 체념과 후회로 뒤범벅된 이별로 흐를 것이라는 걸 우린 첫 소절부터 이미 알고 있다. '해줄 수 없는 말'의 주제는 그런 한국 발라드가 긴 시간 품어온 역설의 작별 인사, 즉 '사랑하니까 널 떠난다'거나 '날 떠나 부디 행복해'라는 마음에도 없는 슬픈 진심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그리고 김기태는 앞서 말했듯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적 분위기를 택했다. 바로 록 발라드다.
김범수와 김기태의 갈림길은 창법에서 뿐만 아니다. 편곡에서도 갈린다. 피아노가 불을 지피고 기타와 베이스가 그 불을 살리고 중반부터 드럼이 온기를 이어받아 마지막엔 보컬과 스트링이 모든 걸 활활 태워올리는 '그대의 세계'의 편곡은 90년대부터 끈질기게 살아남은 한국형 팝 발라드 공식을 망라하고 있다. 보통 한국에서 이러한 편곡을 거치면 어지간 해선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감동으로 이어지곤 했다. '해줄 수 없는 말'도 피아노가 보컬 곁에 흐른다는 것에선 '그대의 세계'와 비슷하지만 보컬과 드럼의 거친 톤과 곡 곳곳에서 울고 있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 만큼은 김기태가 '로커'임을 꾸준히 일깨우고 있다. 특히 김기태의 신곡은 멜로디와 구성이 마치 'Endless'의 2024년 버전처럼 들려 좀 더 흥미롭다. 플라워라는 밴드를 아는 세대에겐 그만큼 반갑고 애절할 것이란 얘기다.
한때는 발라드가 지금의 아이돌과 트로트만큼 주류였던 적이 한국 가요계에도 있었다. 수요가 얼마나 많았는지 정규 앨범에 발라드를 넣기 싫어한 음악가도 살기 위해선 거의 의무적으로 발라드를 넣어야 했을 만큼 한국인들은 발라드를 사랑했다. 발라드는 장르라기보단 정서인 탓에,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발라드 사랑이란 결국 유행과는 무관한 사시사철 모두의 마음 어딘가에 숨어있는 감성의 성역에서 비롯된 것일까. 김범수의 신곡과 그 곡의 프리퀄처럼 들리는 김기태의 신곡이 2024년에도 나올 수 있는 이유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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