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intro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김무곤 교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중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는 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2011년 겨울.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다. 어떠한 용도도 없는 가장 순수한 읽기라니! ‘별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읽는 행위’ 위에는 시간이 나이테처럼 축적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쓴다. ‘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그 열아홉 번째는 김준철의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더프레스)이다.
새삼 겨울답게 추운 날이 지나고, 뒤이은 며칠은 제법 한기가 가시고 날이 포근했다. 바짝 추워졌다가 또 날이 풀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곧 봄이 온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떤 봄은 기다리기만 한다고 해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광복’과 ‘독재자의 몰락’ 같은 봄 말이다. 1979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이후 서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도 잠시,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반란을 일으키고 군 내 사조직을 총동원해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였다.
12·12군사쿠데타의 그날을 담은 영화 ‘서울의 봄’이 지난해 11월 말에 개봉했다. N차 관람 열풍을 몰고 오며 영화는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1979년 12월 12일, 서울의 봄은 끝내 오지 못했다. 서울의 봄뿐만 아니라 김오랑의 봄도 오지 못했다. 김오랑은 그날 밤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고자 반란 세력과 교전하다 숨진 대한민국 육군 소령이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각자가 믿는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대한민국 군인이 서로 총을 겨눈 비극의 날이었다. 김오랑의 비극은 자신이 선택한 정의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안일한 불의의 길이 아닌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김준철이 쓴 김오랑 평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의 한 구절이면서 사관생도의 다짐이기도 하다. 김오랑은 1969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뒤 1970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사관학교와 학군단 교관을 거쳐 특전사에 자원했다. 1979년에 특전사 행정장교로 보직을 받아 정병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복무 중이었다. 그날 밤 그가 끝까지 지켜 내려고 했던 것은 과연 사관생도의 신조였을까. 대한민국 역사를 꿰뚫고 있는 단어가 군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었을까. 목숨을 걸고 수호하고자 했던 것은 사령관 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나라에 이로운 일이라면 자기 한 몸 돌보지 않는 것이 충(忠)이라는 말처럼 김오랑의 충은 대한민국 군인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지켜 내려고 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대한민국이었다.
김오랑이 기다린 새벽은 ‘정의가 승리하는 그저 어제와 같은 아침’이었지만 불의가 승리한 그날 이후 오랫동안 정의는 억압받았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염원은 또다시 군홧발에 짓이겨졌다. 더욱 무참하고 참혹하게…. ‘봄’을 기다리는 사람은 더 큰 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일까. 먼 옛날 이순신과 안중근이 그랬고, 그날 김오랑이 그랬다. 외면하고 망각하고 침묵을 지켜도 되는 상황에 그들은 직책을 내던지고 목숨을 걸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마지막 좌절이라고 할 때 누군가에게는 후회 없는 무너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정치적 신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게 정의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의’가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것이 정의인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자기 입맛에 맞게 바꿔 쓸 수 있다면 정의가 아니다.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정의, 바로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다. 하지만 정의는 안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뿐. 신군부 세력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은 대부분 불운한 인생을 살다 갔다. 고문을 받고 강제 예편을 당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정의가 승리하는 데까지는 희생이 따른다. 때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이다. ‘정의’의 의로울 의(義)를 보면, 양 양(羊)에 손 수(手)와 창 과(戈)로 이루어져 있다. 정의라는 말 자체가 부당한 세력으로부터 약한 존재들을 지켜내기 위한 외롭고 버거운 투쟁이다.
김오랑이 그날 죽지 않고 살았다면 대한민국은 어땠을까. 찢기고 밟히면서도 그는 꿋꿋이 고개를 쳐들고 그들에게 맞서 불의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현재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있겠지만, 그냥 열심히 지금을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김오랑의 말이 ‘오늘도 열심히 살라’는 응원처럼 들린다. 열심히 나의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의인이 목숨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뜻을 잊지 않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정의가 아닐까. 이 책의 저자 김준철이 바라는 것처럼, 또 자신을 기억해 줄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김오랑의 소망처럼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윤정(서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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