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T1 발로란트 윤으뜸 감독 "T1, 아스날 같은 팀으로 만들고 싶다"①

허탁 2024. 1. 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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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은 지난 시즌 VCT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팀 중 하나였다. e스포츠에서 T1이라는 팀이 가지는 브랜드 가치와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VCT 체제로 돌입하면서 무대를 옮긴 팀이라는 사실은 T1에 대한 발로란트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막상 시작된 시즌에서 T1은 다소 불안한 출발을 알렸다. 시즌 전 대회인 락//인과 VCT 초반 성적 모두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 했다.

그러나 T1은 시즌이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모습으로 결국 VCT 최종 성적 3위, 마스터즈와 챔피언스 진출권을 모두 획득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VCT 퍼시픽을 통해 발로란트를 처음 접한 팬들은 성장 드라마로 T1의 VCT 첫해를 기억하게 됐다. 그러나 이어진 마스터즈와 챔피언스에선 모두 그룹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면서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T1 발로란트 팀 윤으뜸 감독을 만나 다사다난했던 T1의 2023년에 대해 들어봤다.

◆ T1의 반전, 연패 후 시작됐다

윤으뜸 감독은 지난해를 "지도자 경력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을 해"라고 표현했다. 배틀그라운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처음 시작한 윤 감독은 이제 7년차 지도자다. e스포츠 감독으로는 적지 않은 경력이고, 특히 역사가 길지 않은 발로란트 감독으로는 베테랑에 속한다. 윤 감독은 "작년은 가장 기억에 남을 해다. 스토리도 많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또 보람찬 순간들도 있었다"고 지난해를 요약했다.

2023년을 돌아보면서 윤으뜸 감독은 가장 먼저 "재능 있는 선수들이 필요할 때마다 (좋은 플레이를) 해줬다"면서 "특히 '사야플레이어'의 솔선수범이 큰 도움이 됐다. 팀에서 실력적으로도 가장 뛰어난 선수지만, 그와 별개로 좋은 리더십을 갖춘 선수였다. 솔선수범해서 연습을 더 하는 분위기를 만든다거나, 혹은 제가 조금 힘든 연습 스케줄을 주문했을 때 따르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선수 개인이 마인드 컨트롤이나 리더십 적인 측면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물론 돕기도 했지만, 그와 별개로 '사야플레이어' 스스로 갖췄던 리더십과 워크에식이 몹시 훌륭했다. 그것이 팀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사야플레이어' 하정우를 지난 시즌의 1등 공신으로 꼽았다.

시즌을 바꿔낸 선수가 하정우였다면, 바꾼 순간은 언제였을까. 윤 감독은 정규 시즌 연패를 기록한 시기를 반전 포인트로 기억했다. 윤으뜸 감독은 연패 당시에 대해 "페이퍼 렉스(PRX)전에서 졌을 땐 그 팀이 원래 잘하는 팀이기도 하고, 또 그 주에 합류한 '썸띵'이 너무 잘해서 지고 나서도 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젠지를 상대로는 경기 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의식이 팀에 공유된 상태였는데, 결과는 원사이드 패배였다. 선수들도 저도, 그 패배에 충격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윤 감독은 연패 이후 팀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윤 감독은 "그때부터 팀의 분위기를 강하게 잡았다. 그전까진 팀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진 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연습실 출근이 1시까지라면, 선수들이 1시에 연습실에 와서 점심을 그때 먹었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연습이 시작하는 시간은 1시 40분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지만, 시즌이 진행되고 스케줄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선수들이 조금 풀어진 모습이었다. 이런 부분을 용납해 주던 것을 다시 강하게 잡았다"라고 풀어놨다.

또 다른 변화점은 코치진의 말을 듣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윤 감독은 "저희 외국인 코치가 한 명 있다. 그때 당시 선수 중 일부가 그 코치의 말을 좀 많이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코치가 하고 싶은 전략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연패 후에 선수들에게 '코치가 지시하는 것은 무조건 따르라'고 지시했다. 따라보고도 안된다면 그때 내가 개입하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게임적으론 콜 밸런스를 다잡았다고 언급했다. 윤 감독은 "IGL(인게임 리더, 게임에서 메인 콜을 도맡는 사람)이 콜을 하는 것보다 여러 선수들이 콜하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또 5명이 다 콜을 하면 너무 난잡하다. 그래서 저는 IGL만큼 발언권이 센 서브 콜러를 중요시한다. 서브 콜러를 포함해 2명이나 3명이서 주도적인 콜을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이다"라고 설명한 뒤, "그 때 기준으론 콜 밸런스가 많이 깨져있었다. 선수들의 성향 문제였다. 이런 것도 바로 잡았다"고 덧붙였다.

윤 감독은 이어 "이런 변화를 가져간 뒤에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바로 찾아오진 않았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진 편이었다. 그때 당시 연습경기 승률이 20%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변화를 가져가기 전보다 더 좋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분위기는 계속 악화됐다. 그시기에 분위기를 잡기 위해 저도, 선수들도 많이 노력했다. 특히 작년 선수들의 경우 타 종목에서 커리어가 있는 선수들이 많다보니, 승부욕이 강하고 그만큼 졌을 때 힘들어했다. 그 때 제가 선수들을 모은 뒤 엄청 강하게 선수들에게 얘기했다. 그러고 나서 대회에 갔는데 앞서 말한 코치가 가져왔던 전략이 잘 통하면서 이겼다. 거짓말처럼 이기고 나니 스크림 성적도 올라가고, 팀 분위기도 좋아졌다"라고 회상했다.

팀과 함께 챔피언스에 나선 윤으뜸 감독. 사진=라이엇 게임즈 제공.
◆ 챔피언스, 선수들 조급함 막지 못했단 후회 남아

분위기를 탄 T1은 VCT 퍼시픽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플레이오프에서도 DRX와 풀세트 접전 끝에 3위에 오르는 등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국제대회, 도쿄 마스터즈와 챔피언스 마드리드에선 모두 조기에 탈락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윤 감독은 두 대회를 돌아보며 "마스터즈보단 챔피언스가 아쉽다"고 말을 꺼냈다. 마스터즈가 성장의 과정이었다면, 챔피언스가 결과를 보여줘야 할 장소였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윤 감독의 생각이었다.

윤 감독은 마스터즈에 대해 "결과는 아쉬웠지만 얻는 것이 많았던 대회"라고 요약했다. 윤 감독은 "VCT에서의 좋은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갔던 대회다. 국제대회에 진출한 강팀들을 상대로도 연습경기 승률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프나틱도, 이블 지니어스도 저희가 잡았다. 그런데 유독 약한 팀이 있었다. 중국의 EDG(에드워드 게이밍)과 퍼시픽의 PRX다. 두 팀을 상대론 스크림 성적이 제가 기억하기론 3승 27패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T1은 천적 EDG와 함께 A조로 마스터즈를 시작했다. 첫 경기에선 EDG를 만나 잡아냈던 T1은, 승자전서 NRG에게 패하고 다시 만난 EDG에게 최종전서 패하면서 그룹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윤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EDG를 첫 경기에서 만나 이겼다. 그런데 당시 저희가 잘해서 이겼다기보단, EDG의 선수들이 국제대회 첫 경험이라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NRG 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NRG 전에서 진 이유는 사소한 실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실수는 당시 선수들이 성장 과정에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나올 수밖에 없는 실수였다. 그래서 실수만 없으면 이길 수 있었던 상황까지 만든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봤다. 이대로 챔피언스까지 성장하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윤 감독은 마스터즈와 달리 챔피언스에 대해선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라고 명확하게 표현했다. 이어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윤 감독은, 선수들의 욕심이나 조급함이 팀의 방향성을 어지럽혔다고 직설적으로 고백했다. 윤 감독은 "챔피언스는 1년의 마지막 대회고 발로란트 최고의 무대다. 또 앞서 말했듯이 우리 선수들 같은 경우 승부욕이 강한 선수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이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감독인 제 방향성보단 본인이 맞다고 판단하는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윤 감독은 '밴' 조셉 승민 오가 이런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을 이어갔다. 윤 감독은 "선수들 중엔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성장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멘탈 케어가 우선 들어가고 그 다음에 피드백을 받아야 성장하는 선수가 있다. '밴'은 명백히 후자였다. 그런데 선수들 중 몇몇이 본인 욕심이 있다보니까 연습경기 중 아쉬운 상황이 나올 때마다 '밴'에게 직접적으로 피드백했다. 일대일 면담으로 말려도 몇 시간 뒤면 다시 아쉬움을 드러내는 장면이 반복됐다. 그러다보니 '밴'이 굉장히 많이 힘들어했다. 물론 제가 부족한 점도 있다. 선수를 설득하지 못했거나, 혹은 선수가 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과정에서 '밴'의 퍼포먼스가 굉장히 많이 떨어졌다. 연습 경기서 제가 본 것 중 최악의 퍼포먼스가 나오는 상황이 지속됐다"고 그 당시를 되돌아봤다.

또 시즌 당시 설립한 콜 체계가 무너진 것 역시 윤 감독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윤 감독은 "콜 체계가 젠지 전에서 졌을 때 당시로 돌아갔다. 그것도 앞선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선수들 중 누군가가 방향성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짧게 설명했다. 이어 윤 감독은 "감독인 제 입장에선 몹시 아쉽다. 제가 봤을 때 맞는 방향성이 있었고, 물론 따르도록 지도하지 못한 건 제 잘못이지만 VCT와 마스터즈에서 성장하는 흐름을 만들어냈는데 그 흐름이 끊겼다는 점이 뼈아프다. 챔피언스에선 조 배정 역시 좋았는데,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성적을 못 내 후회가 된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T1을 EPL 아스날 같은 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

윤 감독은 챔피언스에서의 아쉬움이 리빌딩을 결정하는 것에 영향을 끼쳤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윤 감독은 "챔피언스에서 앞서 말한 아쉬움들을 경험하면서, 저와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저를 잘 따를 수 있는, 제 방향성에 동의하는 선수들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리빌딩의 이유가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윤 감독은 더욱 큰 그림을 보고 있었다. 평소 스포츠를 즐겨 본다는 윤 감독은 특히 스포츠에서도 감독이나 매니지먼트 부분을 유의 깊게 살펴본다고 말했다. 이어 윤 감독은 프리미어 팀 아스날을 T1의 롤모델로 꼽았다. "최근 인상 깊게 본 다큐멘터리가 아마존에서 만든 'ALL OR NOTHING'이다. 아스날 편을 보는 데 구도나 환경이 저희 팀과 비슷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 아스날의 아르테타 감독도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가 분위기를 해친 상황에서 과감하게 처벌을 했고, 본인의 결정을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그렇게 팀을 만들어 성공했다. 저는 이게 감독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써 확실한 컬러와 뚝심을 지녀야, 길게 봤을 때 팀을 잘 구성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감독은 팀의 목표로 아스날처럼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제시했다. 윤 감독은 "발로란트는 한국에서 뜨는 종목이다. 지금의 인재풀과 3년 뒤의 인재풀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지금 급하게 팀을 만드는 것보다, 신인들에게 저 팀에 가면 성장할 수 있겠다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성적을 포기할 순 없다. 성적을 못 낸다면 저런 이미지 역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와 성적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동시에 구축하는 것이 감독으로써의 저의 목표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②로 이어집니다.

허탁 기자 (taylor@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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