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사망 급발진 의심 사고…'제동등 켜졌나' 쟁점 공방 전망
제동등 점등 방식도 이견…내일 법정서 블박·CCTV 영상 검증
(강릉=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제동등 점등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운전자 측은 영상 자료를 근거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제조사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를 근거로 "밟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는 오는 30일 운전자 A씨와 그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약 7억6천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 검증기일을 진행한다.
재판부는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기 전 주행 과정에서 차량 후미의 뒷유리창 상단에 있는 보조 제동등이 들어왔는지'와 '급발진 의심 사고 과정에서 후미 좌우 메인 제동등이 들어왔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이와 관련해 원고(운전자) 측은 "보조 제동등은 이미 고장 난 상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로 급발진 현상이 일어나기 직전에 발생한 모닝 차량 추돌 전 주행 영상을 제시하고 있다.
당시 사고 차량을 뒤따르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는 사고 차량의 좌우에 있는 메인 제동등은 점등되지만, 보조 제동등은 점등이 되지 않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에 원고 측은 '모닝 추돌하기 전부터 추돌 이후 상황에서는 보조 제동등이 명확히 점등되는 상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 자체가 보조 제동등이 고장 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잘못된 분석'이라고 주장한다.
또 '모닝 차량 추돌 전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판단한 국과수의 분석 역시 모닝 차량 추돌 직전 메인 제동등이 켜진 모습을 근거로 국과수의 분석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제조사(피고) 측은 "충돌 관성에 의해 메인 제동등이 들어온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충돌 과정 중 관성으로 인한 페달의 움직임만으로도 제동등이 잠깐 점등될 정도로 제동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더해 '운전자는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한 사고기록장치(EDR) 기록과 국과수 감정 결과를 근거로 "A씨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반면 원고 측은 충격 직전 제동등이 점등됐으므로 피고 측의 충돌 관성 주장이 이번 사고 사례에 적용될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충격 크기도 관성에 의해 점등될 수 없는 약한 충격이었다고 반박한다.
영상 속에서 제동등이 점등되는 모습이 명확히 확인되는 만큼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한 EDR의 신뢰성도 상실됐다고 강조한다.
원고 측은 마지막 충돌 전 국도를 질주하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도 메인 제동등의 점등이 선명하게 관찰되는 점도 EDR 신뢰성 상실·국과수 분석 오류·피고 측의 허위 주장을 지적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제동등이 점등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양측은 이견을 보인다.
피고 측은 "브레이크를 밟으면 ECU 상태와 관계없이 제동등이 들어온다"고 주장한다. ECU는 자동차의 주 컴퓨터이자, 사람으로 따지면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다.
반면 원고 측은 "ECU를 거치지 않고서는 제동등이 점등될 수 없다"고 반론한다. 피고 측 주장은 형광등 스위치를 누르면 형광등이 들어오는 것과 같다는 주장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줄곧 급발진 사고가 ECU의 결함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일 이뤄지는 감정·변론기일에서 양측은 이 같은 쟁점들을 두고 서로의 주장을 강화하는 논리를 적극적으로 펼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 도현 군을 태우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몰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도현 군이 숨졌다.
A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에서 A씨에 대한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가 빗발쳤다.
또 A씨 가족이 지난해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이른바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 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으나 답보 상태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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