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곗덩어리’ 삼겹살, 이번엔 식자재 할인마트에 나타났다

정유미 기자 2024. 1. 2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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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재마트·영세업체도 ‘삼겹살 비계 밑장깔기’
‘한돈’ 상표에 속고, 불량 삼겹살에 우는 소비자
“가난하면 지방부위만 먹으라는 게 정부 정책인가”
“브랜드 한돈·육가공업체 지방덩어리 납품 때문”

최근 서울 동대문구 식자재 할인마트를 찾은 주부 김모씨(52)는 큼지막 하게 박힌 ‘한돈’ 인증 마크를 믿고 삼겹살을 골랐다. 게다가 100g당 1300원으로 대형마트보다 70%가량이나 저렴했다. 그러나 집에 와서 막상 열어보니 절반이 비곗덩어리였다.

김씨는 “대형마트 삼겹살은 100g당 3000원 이상으로 너무 비싸 모처럼 가족과 배불리 먹을 겸 식자재마트에서 2㎏이나 샀다”면서 “돈 없으면 비곗덩어리만 먹어야 하는지 값싼 삼겹살을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비참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유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식자재 할인마트’에서 판매한 삼겹살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한 푼을 절약하기 위해 동네 식자재 할인마트를 찾은 서민들이 ‘비곗덩어리 삼겹살’에 울상짓고 있다.

2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최근 대형마트·온라인몰에서 비계 삼겹살이 새삼 비판받는 가운데 서민들이 자주 찾는 식자재 할인마트까지 포장 아랫부분에 비곗덩어리를 교묘히 깔아 파는 눈속임 상술이 퍼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 명절 성수기를 앞두고 지방 비중이 많은 삼겹살 유통을 막기 위해 특별점검에 나선 행정 당국을 무색케 하는 장면이다.

국내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식자재 할인마트에서 구입한 삼겹살’이라는 글과 사진이 올라오자 “그냥 비계를 샀는데?” “비계 8대 고기 2” “김치 굽는 용도”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온라인 게시판에는 “버려야 할 비곗덩어리를 버젓이 상품으로 팔고 있는 식자재마트”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 싼 게 비곗살” “가난한 서민은 ‘부정식품 좀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건가” 등의 비판글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동네 식자재 할인마트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육류 등 가격이 훨씬 저렴한 만큼 서민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장터다.

최근 물가 폭등으로 삼겹살을 싸게 구입하려는 서민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포장을 뜯으면 밑부분이 대부분 비곗덩어리라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식자재 마트 판매 삼겹살

이에 식자재 마트업계는 오히려 ‘비곗덩어리 삼겹살’은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지방과 고기 비중이 적절한 삼겹살을 상품화하려면 사료 개발 등 생산업체인 사육 농가를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정부에 있어서다.

또 정부가 전폭 지원하는 육가공업체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자재 마트의 경우 삼겹살을 육가공업체로부터 80~90% 발골된 부분육으로 받기 때문에 애초에 비곗덩어리를 납품받으면 별도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ㄱ식자재 마트 관계자는 “비계 많은 돼지를 키우는 농가에 문제가 있는데 정부는 애꿎은 판매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특히 육가공업체들이 지난해 ‘삼겹살 데이(3월3일)’ 비곗덩어리 이슈 이후 식자재 마트에 지방이 많은 삼겹살을 대량으로 떠넘기고 있는데 정부는 손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돈’ 상표(BI·브렌드 정체성)도 논란거리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돈 상표는 식자재 마트나 동네 정육점 등 영세업체에서 마구잡이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또한 한돈 상표 관리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소비자는 보통 ‘국내산 돼지고기=한돈’으로 알지만, 한돈자조금의 ‘한돈’ 상표는 계약처가 아니면 쓸 수 없게 돼 있다.

1·2차 육가공업체들이 한돈 상표를 쓰려면 해썹(HACCP) 인증과 자체브랜드(PB) 보유, 연 80억~200억원 이상 매출 등의 심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돈자조금 관계자는 “식자재 마트나 동네 정육점 등에서 잡다한 돼지고기 여러 부위를 섞어 놓고 한돈 상표를 부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기행위”라며 “모니터링을 통해 계도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몰래 인쇄소에서 상표를 복사해다가 팔고 있어 골칫덩어리”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이것도 불만이다. ㄴ식자재 마트 관계자는 “국산 돼지고기는 전부 한국산, 한돈인데 ‘한돈’ 상표를 쓰지 말라는 것은 브랜드 한돈업체와 가진 자(한돈자조금)들의 독과점적인 횡포”라며 “국민혈세인 정부 예산은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인 브랜드업체들이 다 가져다 쓰는데 영세업체들은 어쩌라는 거냐”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03년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사육 농가가 어려움을 겪자 도드람 등 브랜드 한돈 육성을 위해 20여 년째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한돈자조금에 53억5000만원, 시민단체 ‘소비자 시민모임’의 우수 브랜드 인증사업 등에 2억5000만원 등을 썼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영세업체들이 삼겹살 비곗덩어리를 버리거나, 김치찌게용으로 팔 경우 이윤이 절반 이상 줄기 때문에 정부 방침을 따르기 어렵다”면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정부 대응책으로는 비곗덩어리 삼겹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비곗덩어리 삼겹살 비판에 지난해 10월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업계에 배포했다. 매뉴얼은 소포장 삼겹살은 1㎝ 이하, 오겹살은 1.5㎝ 이하로 지방을 제거하고 ‘과지방 부위’는 폐기토록 권고한다.

농식품부는 올 들어서 비곗덩어리 삼겹살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오는 2월8일까지 축산물 가공·유통업체 중 1만곳을 대상으로 품질관리 실태 특별점검·지도에 들어갔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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