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미역 뜯어먹는 소리? 기후위기 전부터 맛있게 먹어 왔습니다

한겨레 2024. 1. 2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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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4회
벨루가를 사냥하고 있는 북극곰. 북극곰 등 야생동물 관찰 체험을 제공하는 캐나다 ‘처칠 와일드(Churchill Wild)’ 홈페이지 갈무리.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기후위기 논란의 현장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이 출동합니다. 어지러운 숫자들로 뒤덮인 복잡한 자연-사회 현상을 엉망진창 조사반이 주제별로 조사해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조사반의 활동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사실과 의견은 취재와 논문, 보고서 등을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3회 다이빙하는 북극곰의 비밀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25382.html)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이 캐나다 허드슨만 처칠에 도착한 것은 그해 7월이었습니다. 처칠의 여름은 따스했습니다. 북극곰 관광객으로 붐볐던 지난가을만큼은 아니었지만, 흰고래를 보러 온 사람들로 마을은 북적였지요. 허드슨만 앞바다는 온화한 파도가 쳤지요. 한겨울 북극 바다를 누비던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의 북극곰도 처칠 인근으로 다 돌아온 뒤였습니다.

허드슨만 북극곰에는 크게 두 집단이 있습니다. 처칠 주변에서 허드슨만 서쪽까지 분포하는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 허드슨만 동쪽으로 온타리오주 북극곰주립공원까지 분포하는 동부 허드슨만 개체군입니다. 한겨울 북극해에서 벌인 사냥으로 배가 빵빵해진 두 개체군은 허드슨만 바다가 녹는 5~7월 육지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바다가 어는 10~11월 다시 북극해로 긴 사냥 여행을 떠나지요.

처칠 동쪽 와푸스크국립공원에서 산딸기를 따는 북극곰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북극곰이 산딸기도 먹나요?”

“허드슨만 북극곰은 여름에는 채식도 합니다. 바다에선 미역도 따먹습니다.”

“차라리 여름에도 얼음이 있어 물범을 사냥할 수 있는 북극의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시지, 여기서 왜 힘들게 머물고 계십니까?”

“그럼, 당신은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가서 살지 그러나?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누구나 고향이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허드슨만의 북극곰이야말로 2만6천 북극곰 가운데 가장 다재다능한 사냥꾼이라오. 인간들은 우리가 기후변화 때문에 채신머리없게 산딸기 먹는다고 그러던데, 천만의 말씀!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렇게 살아왔다오. 한여름 육지에 머물 적에는 카리부(순록의 일종), 토끼, 새알, 미역 다 먹지. 무엇이든 다 사냥하고 다 채취해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의 자부심이야.”

“혹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북극곰 사냥 워크숍’을 들어보셨습니까?”

“워크숍은 모르겠고, 다이빙 연습하는 북극곰들은 잘 알지. 물범의 강(Seal River)으로 가보시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최신 사냥법

그가 알려준 곳은 처칠에서 해안가를 따라 서북쪽으로 60㎞ 떨어진 지점에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물범의 강과 허드슨만이 만나는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헤엄치는 하얀 돌고래떼가 나타났습니다. 흰고래였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북극곰 여남은 마리도 해안가에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이곳의 리더로 보이는 북극곰이 망원경으로 흰고래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인간은 북극곰이 흰고래를 사냥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지. 지금도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가 갑자기 흰고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야. 우리는 1만1250년 전 홀로세부터 육상 사냥을 했다오. 처칠 마을에 놀러 갔다가 감옥에 갇힌 북극곰이 육상 사냥법을 알려줘서 과학자들이 논문까지 썼다고 하던데, 아직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2017년 <미국박물관수련>(American Museum Novitates)에 게재된 이 논문은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의 여름철 사냥법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먼저 ‘쫓기’(chasing)입니다. 북극곰은 큰기러기 무리를 쫓아서 버드나무나 자작나무 숲에 일시적으로 가둔 뒤, 여러 마리를 사냥합니다. 둘째, 몰래 다가가기(stalking). 알을 품은 기러기에 몰래 다가가 잡아챕니다. 어미 기러기는 알을 두고 도망가지 않거든요. 셋째, 매복(ambushing). 카리부떼가 지나갈 때 키 큰 관목 뒤에 숨었다가 대열의 맨 끝 동물에 돌진해 잡아 뭅니다. 넷째, 청소부처럼 쓸어담기(scavenging). 조수간만의 차로 바위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를 쓸어 먹습니다. 쇠솜털오리 등 다양한 새의 알을 먹어치우지요.

북극곰 등 야생동물 관찰 체험을 제공하는 캐나다 ‘처칠 와일드(Churchill Wild)’ 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것 말고도 최신 사냥법을 가르친다고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는 거야. 아주 영리한 방법이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다얼음 기반의 사냥 전략과 동일해.”

그때 북극곰이 하나둘 바닷가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밀물이 찼고, 바위는 이내 조그만 바위섬이 되어 머리만 드러냈습니다. 수심이 깊어지자 멀리 있던 흰고래떼가 다가왔습니다.

“지금이야, 입수!”

리더 북극곰이 소리치자, 바위섬에서 기다리던 북극곰들이 일제히 흰고래를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작살처럼 몸을 날려 다이빙했죠. 하지만 누구도 흰고래를 잡진 못했죠.

“쉽지는 않아. 그래도 배고픈 여름철에 해볼 만한 시도야.”

“언제 이 사냥법을 개발하신 건가요?”

“나도 누가 언제 개발했는지는 몰라. 2014년에 처음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전일 수도 있지.”

“기후변화 때문에 이런 사냥법을 가르치시는 겁니까? 갈수록 바다얼음이 줄어들고 있어서요?”

일본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고 혹등고래가 노래하듯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먼저, 우리가 벼랑에 몰리듯이 뒤쫓겨 얼음이 없는 내륙에서 흰고래를 잡는 건 아니야. 아까 말했잖나? 우리 허드슨만 북극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육상 사냥을 해왔다고. 일부 다큐멘터리에서는 마치 우리가 바다얼음이 없어 허겁지겁 육상 사냥을 시작했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그건 사실이 아니야. 우리는 새로운 사냥법을 개발하고 새끼와 동료에 전파한다네. 바로 문화라는 거지. 오직 인간에게만 문화가 있다는 건 허황된 이론이야.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어. 일본원숭이는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고, 혹등고래는 노래를 부르지. 물론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바다얼음이 줄어들면, 이런 사냥법이 더 자주 필요해질 걸세. 그래서 이렇게 내가 워크숍을 열고 가르치는 거야.”

밤 9시가 돼도 해는 지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최고의 수영선수인 북극곰도 바닷속에서는 흰고래를 당할 길이 없습니다. 백야의 하얀 햇살 속에서 북극곰은 다이빙을 계속했습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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